<유레카2000>8.화장품-종족.신분구별 고대부터 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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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날 사용되는 주요화장품인 크림이나 분(粉),아이섀도 등은최초로 화장품을 사용했다는 이집트(기원전 4천여년전)가 아니더라도 고대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북방에 거주했던 읍루인(읍婁人)들은 겨울에 돼지기름을 얼굴에발랐고,남방에 거주한 변한인(弁韓人)들은 얼굴에 문신치장을 했다는 등의 「삼국지위지동이전」 기록이 그것이다.특히 1백일동안햇볕도 안드는 동굴에서 미백(美白)효과가 뛰어 난 마늘과 쑥만먹고 지내도록 하는 단군신화의 내용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흰 얼굴을 선호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물론 이 당시 화장의 목적은 오늘날처럼 아름다움과 피부보호만은 아니었고 자기과시,종족.신분.계급구별,종교적인 목적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는 초기에 이미 향유(香油)를 몸에 바르거나 눈가에 초록색의 돌가루로 테를 그렸고 후기에는 눈썹문신.입술연지.볼연지 등을 했을 정도였으며 이후의 화장법도 이 범주를넘지 못했다.화장품의 재료 또한 어떤 화장법을 택하는가에 따라그에 맞는 식물이나 광물을 이용만하면 됐기 때문에,특별한 기술발전보다는 문화적 요인에 따른 변천이 화장품의 초기발달사였다.
예외가 있다면 기원전4세기 그리스의 윤락녀들이 활석이나 백토(白土)대신에 납(鉛)을 분가루에 넣은 연백(鉛白)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다.중금속인 납은 분말로 만들기도 쉽고 양이온계를 띠고 있어 음이온계인 피부와 결합력이 높아지 는 특성이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쌀.서속(기장과 조)가루,분꽃의 씨앗가루(이 때문에 분꽃이라 부르게 됐음)를 분(粉)으로 사용하다 조선후기 들어 납을 섞는 비방이 등장했다.1922년 국내화장품제조허가1호로서,오늘날 두산(斗 山)그룹의 모태가 됐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박가분(朴家粉)에도 납성분이 포함됐었다.
또 피부를 하얗게 하기 위해 수은을 분에 사용하는 경우도 중세이후 시작,1970년대까지 계속됐는데 이는 수은의 분자가 피부세포에 침투,검은색을 띠는 멜라닌색소의 단백질고리를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과 수은은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화장독」이라 불리는 피부괴사현상을 일으키는 유해한 성분이어서,50년대이후 사용이 전면금지됐으나 그 효능을 노린 불법화장품들이 종종 등장,논란을 빚어왔다.
오늘날의 분에는 빛의 차단.반사능력이 뛰어나고 입자가 작아 피복력(골고루 메워주는 능력)이 좋은 이산화티타늄이 주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피부색에 맞추기 위해 붉은 색의 산화철을 다소섞어 색깔을 낸다.
피부에 기름피막을 형성,피부보호 및 수분증발을 막고 유분 등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는 크림의 경우는 근세들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피부자체로도 피지(皮脂)분비를 통한 피막을 형성,피부를보호하는 기능이 있으나 장시간 지속될 경우 지방 이 산화돼 악취가 나기 때문에 향료를 섞은 크림이 이 기능을 대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크림의 기능도 클렌징크림(계면활성제를 함유해 세정작용을 함),바니싱크림(피막형성),콜드크림(마사지,피부유연효과용)등으로 나뉘지만,과거 6.25전후에만해도 글리세린.파라핀 등의조잡한 원료(오늘날엔 주로 스테아린酸사용)에 적 당히 향료만 섞은 크림이 판매됐다.「동동구리무」라는 말은 과거 큰통에 크림을 담아 한 주걱씩 떠서 파는 크림장수가 동네에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북을 「동동」쳤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동양의 색조화장법은 3천년전 은(殷)나라 때부터 시작됐으며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서도 연지(립스틱)화장이 엿보인다.주로 붉은 진흙이나 꽃잎으로 원료를 만들었는데 근세에 와선 광택이 좋은 피마자유에 안료를 섞어 만들다가 최근에는 입술 보호나 묻지않는 기능을 위해 각종 천연기름 성분을 합성해 만들고 있다.
해방직후 락희화학(現럭키)의 럭키크림,태평양화학의 ABC포마드 등으로 시작된 국내 화장품공업은 6.25직후 미군PX를 통한 외제품으로 기반이 무너졌으나 5.16혁명으로 「특정외래품 판매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
㈜태평양연구소 이옥섭(李玉燮)상품개발1부장은 『현재 화장품개발의 추세는 화장자체의 기능보다 피부세포활성화.자외선차단.노화방지 등 첨단기능으로 바뀌고 있으며,국내업계의 수준도 대부분 분야에서 일본에 버금가고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지방으로 이뤄진 극소형 구체(球體)내에 토코페롤 등 생체활성화 성분을 넣어 피부세포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리포좀기술(86년 프랑스랑콤社최초실용화),미생물을 이용한 보습물질 개발,자외선을 쬐면 변색됐다가 자외선이 없으면 원래의 색으 로 바뀌는 파우더,토코페롤보다 세포막손상방지효과가 10배이상 높은 플라보노이드원료개발,노화억제를 위한 세포내 유해산소차단기술 등이 국내외에서 개발된상태다. 〈李孝浚기자〉 ***다음회는 「전등」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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