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확산 속도, 방제력 … 해양부 예측 다 틀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기름 폭탄을 맞은 충남 태안 앞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사고 사흘 째인 9일 5000여 명의 인력이 태안 앞바다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당국의 섣부른 오판이 화를 불렀다. 겨울의 수온이 낮아 기름이 요구르트처럼 뭉치고 더디게 이동할 것이란 안이한 낙관론이 피해를 키웠다. 기상 악화라는 악조건을 감안해도 초기 방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9일 오후 10시 현재 기름띠는 당국의 예상보다 더 빨리 해안가로 밀려들었고 피해지역도 훨씬 넓어지고 있다. 대형 개펄을 끼고 있는 근소만과 가로림만까지 기름이 흘러들고 있다. 해양부 이장무 기획관은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띠, 왜 빨리 움직이나=해양부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8일 오전(사고 발생 24시간 후)부터 해안 오염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고 선박이 해안에서 10㎞나 떨어져 있고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고 발생 13시간 후인 7일 오후 8시부터 학암포.천리포.만리포 등에 기름띠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해양부 관계자는 "애초에 초속 10~14m의 북서풍이 불 것으로 예상했지만 7일 오후와 밤 내내 예상보다 강한 바람이 불면서 기름의 확산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다.

기름이 응고돼 여름철보다 확산 속도가 느릴 것이라고 봤던 애초의 예상도 빗나갔다. 강한 바람을 타고 높이 2~4m의 파도가 치면서 기름 덩어리들이 높이 1m의 오일펜스를 손쉽게 뛰어넘었다. 당국은 높은 파도와 강한 바람을 이유로 사고 해역에 I자형 오일펜스만 쳤다.

2005년 만든 '위기관리 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1차적으로 사고 선박 주변에 U자형, 그리고 해안 양식장을 보호하기 위해 J자형 펜스를 차례로 치도록 돼 있다.

◆넓어지는 피해지역=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 특성 때문에 유속도 빨라졌다. 이중삼중으로 쳐놓았던 오일펜스를 넘어 근소만으로 기름이 흘러든 것도 이 때문이다. 해양부는 유출된 기름의 80% 정도가 이미 해안가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해양부는 초기 방제를 자신했다. 사태 초기 사흘간의 기름 방제 능력을 올해 1만6600t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흘 동안 실제로 걷어낸 양은 유출된 1만500t 가운데 1%도 안 되는 100여t에 그쳤다.

기름띠는 사흘째인 9일 사고 지점 남방 30㎞, 북방 20㎞ 해상까지 퍼졌다. 모항리~태안화력까지 27㎞ 해안은 질척한 기름 덩어리로 범벅이 됐다. 그 위아래 10여㎞ 해안지대에는 얇은 기름막이 끼어 있다. 당국은 기름띠가 근소만.가로림만까지 침투할 조짐을 보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거센 바람 때문에 유출된 기름 1만t 전부가 해안으로 밀려올 것이다" "남해안까지 갈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도 각오해야"=기름띠가 개펄로 접근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름이 개펄에 스며들 경우 피해는 커지고, 복원까지 걸리는 시간도 늘어난다. 모래와 암석으로 구성된 해안선은 오염 물질을 걷어내기만 하면 되지만 개펄이 오염되면 개펄 자체를 들어내야 한다. 진흙과 기름이 엉켜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강무현 해양부 장관은 "기름 덩어리가 덮친 해안 쪽 피해가 심각하다"며 "피해 지역에서 (어패류가) 살아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살아남는다 해도 (시장에서) 유통이 잘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긴급복구에만 2개월 이상 걸릴 것이며, 개펄이 오염되면 완전 복구까지 얼마나 걸릴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재난사태 선포=정부와 지자체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재난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판단되면 선포한다.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재난을 신속히 수습하기 위해서다. '재난사태'를 선포하면 재난경보를 발령하거나 인력.장비.물자를 동원하고, 공무원 및 민방위대를 비상 소집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재난사태 선포로 발령된 명령을 듣지 않을 경우 최고 2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2005년 4월 강원도 고성.양양에 산불이 났을 때 최초로 재난사태가 선포됐고, 이번이 두 번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