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과학자는 면보다 수프를 먼저 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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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라면으로 요리한 과학
이령미 지음, 갤리온, 212쪽, 9800원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먼저 뱃속부터 채울 것을 권한다. 십 중 팔구 몇 페이지 못 넘기고 쫄깃쫄깃한 면발이 아른거리고,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듯하고, 따끈한 국물이 간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 믿어도 좋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음식이라는 라면을 파헤친 책은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다. 저자는 라면이야말로 ‘하이브리드 유비쿼터스 사이언스’라고 선언한다. 웬만한 찌개, 탕, 볶음에는 사리가 끼어들고, 스프는 각종 소스로 진화하니 하이브리드다. 낮과 밤을 안 가리고, 간식과 주식을 넘나들며, 집과 편의점, 산과 바다 도처에서 즐길 수 있어 유비쿼터스라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그 성분과 가공에 각종 원리가 개입되고, 라면을 끓이는 행위는 최고의 실험이기에 ‘라면은 과학’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자는 면보다 수프를 먼저 넣는다. 수프의 주성분인 나트륨이 물에 섞이면 맹물보다 끓는 점이 올라가 상대적으로 더 센 온도에서 익은 면발이 더 쫄깃해진다.

또 진정한 미식가는 전자레인지로 라면을 끓인다. 마이크로파가 수분하고만 선택적으로 반응하기에 다른 조리기구에 비해 비타민 같은 영양소 손실이 적다. 음식물의 위와 아래, 겉과 속에 있는 모든 수분과 동시에 반응해 음식물도 골고루 익는다.

라면 봉지 색이 왜 대부분 빨간색인지, 왜 라면 냄새가 강렬한지도 술술 풀린다. 눈 망막의 원추세포에는 빨강색 계열을 감지하는 장파장 세포가 많아 눈에 잘 띄고, 라면 냄새는 휘발성을 지녀서 후각을 담당하는 후각상피에 닿기 용이하기 때문이란다.

다이어트 중인 이들은 밤 10시에 라면을 먹으면 동네 주변을 자정 넘어까지 걸어다녀야 칼로리가 소비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컵라면 용기가 자연분해 되려면 100년이 걸리고, 국물 한 그릇을 희석하려면 2 리터짜리 생수병 200여 개가 필요하다는 섬뜩한 정보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1년간 먹은 라면은 1인당 평균 75개, 총 길이는 지구 4375바퀴에 달한다니 라면을 끊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친숙한 소재를 해부하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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