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6.판소리 동편제 國唱 姜道根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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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1월의해는 짧디 짧다.지난주 일요일,남원(南原)에 도착했던 오후7시30분은 캄캄했다.자동차로 시내길을 지나가는데 가전제품대리점 스피커에서 대금 산조가 들렸다.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민요가 들렸다.새삼스럽게 여기가 남원이다 하고 확 인했다.
나는 고풍스럽고도 이국적인 문틀 하나를 중얼거리는 때가 가끔있다.『유대땅 베들레헴아,너는 세상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예수교 성경에 나오는 가슴 뭉클한 크리스마스 메시지다.이 말속에는 예언 보다 비원(悲願)이 담겨 있다.남원에 머무른 이틀동안『조선땅 남원아,너는 세상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하고 나는 진언이라도 외듯 가끔 외곤 했다.베들레헴은 예수가 난 땅이거니와 말할 것도 없이 지금 남원은 판소리의 베들레헴이 되려하고 있다.
이튿날 오전8시30분,나는 국창 강도근(姜道根)옹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남원의 요천(蓼川)동쪽 덕음산(德陰山)양림(楊林)골짜기에 있는 남원관광단지로 갔다.그분이 제자들에게 동편제 판소리를 가르치는 건물을 찾아 단지 안을 더듬 던 중,나는자동차를 탄채 단지 입구로 다시 돌아 나오고 있었다.그 시간에단지에는 말 물어 볼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마침 입구에 있는 건물 앞에 산보 나온듯 보이는 촌로 한 분이 챙 달린 검은운동모를 쓰고 지팡이를 무릎 위에 얹어 들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그는 자동차를 향해 무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같아 보였다.저분한테 물어보면 되겠거니 싶어 차에서 내려 다가가는데 자세하지는 않으나 그분의 말 가운데 얼핏 강도근이라는 이름이 섞여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차 싶어 걸음을 빨리 해서 그분한테로 다가갔다.
『날 보러 온거 아닌기여?이 강도근이 만나러 오는거 아닌기여?』나는 최동현 저『판소리란 무엇인가』와 흥보가 CD껍데기에서본 그의 사진을 기억해 내고 이분이 바로 강도근옹임을 그제서야알아보았다.그의 얼굴은 사진에서 본 것 보다 훨씬 더 늙고 더야위어 있었다.나중에 운전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우리가 탄 차가 단지 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부터 우리를 향해 계속지팡이를 저으며 말을 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와 대담을 하고 점심을 같이 먹는 동안 그가 드물게 보는 무뚝뚝한 사람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그가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찾아올 사람을 바깥까지 나와 기다린 점이나 그냥 지나쳐버리는 차를 향해 안타까워서 계속 지팡이를 흔들었 다는 점을보아 틀림없다.그의 무뚝뚝함은 가치있는 오직 한가지 것을 찾아낸 사람이 거기에만 신앙과 임무를 다 쏟을 때 나타나는 고귀한특성이라고 보아야 한다.게다가 그는 베토벤을 연상시키기 알맞게귀마저 매우 어두워서 그에게 말을 붙이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나는 그의 흥보가 CD가 언제 취입한 것인지 물었다.그러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좀 다른 데로 나갔다.
『흥보가 판 넣은 거? 그것 잘못된 기여.1년이나 아파 갖고서울대학병원에 입원꺼지 했다가 막 나와서 얼마 되도 안히었는데,어떻게 그시기 하단가,헐 수 없이,그러면 쉬어가면서 조금씩 헐테니 그렇게 넣어 주시오,했소.그리 돼 놓으니 물건이 제대로나왔어야지.』 나는 그에게 내가 그 CD를 들은 바로는 환후중에 부른 소리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고 목소리가 어찌나 기운차고 당당하던지 놀랍더라고 느꼈던대로 말했다.그의 화법(話法)은특이하다.그가 말하려는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대화의 기쁨을 느끼려면 판소리 가사의 화법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공력(功力)이란게 있어요.받이가 있고 성음(聲音)이 있소.
동편제 성음은 된 성음이라 그냥 들어서는 아픈 사람이 부른 소린지 성한 사람이 부른 소린지 잘 몰라.그러나 소리 한 사람은잘못된 줄 알지.아무래도 제대로 된건 아니여.기 운이 없으면 성음이 제대로 나올 수 없응께.옛날 선생들은 기운 없으면 소리를 안해 버려.명예손상이 되니께.』 ***영 화『서편제』는 판소리 일반의 부흥 계기가 되었다.특히 서편제 판소리에 대한 국민적인 애정을 부활시켰다.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또 한가지 생겼다.서편제가 있으면 동편제도 있을 것 아니냐,그러면 동편제는서편제와 어디가 어떻게 ■른 것 이냐.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판소리 하면 동편제 소리밖에는 없었어요.서편제 소리는 근세에 와서 생긴거요.남원에만 동편제가 있었던것도 아니고 각처에 판소리가 다 동편제였어요.동편제는 성음이 서편제와 완전히 달라요.된성음이고 서편제 보다 배나 높아요.배에서 통성(通聲)이 나와야 동편성음이 되는 거요.그런데 동편제만 갖고는 되어서 소리 못히여.한 시간을 못히여.겨우 한 30분 할까.서편제는 하기 좀 편하고 듣기 좋고.동편제는 좀 되고딱딱하고.그러나 동편제는 성음만 얻으면 미쳐버릴 정도요.동편제판소리라 하는 것은 소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은 어만데 안보고 저절로 담뱃불도 끄고 똑 그것만 듣게 하는 것이 주 아니여? 정신을 빼버링께.
성음이 안나오면 동편제는 못해요.조상현이가 지금 나이 들어 갖고 동편제를 해보겠다고 해서 내가 말렸어요.이왕 서편제를 했응께 고놈 하나를 제대로 해서 소리도 하고 제자들도 가르치라고.동편제는 꾀를 못 부려요.꾀를 부린다면 벌써 동 서편을 겸했다고 봐야 해요.』 ***강 도근옹의 설명에 따르면 동편제와 서편제의 근본적 차이는 발성법에 있다.소리 자체에 최고의 음악적 가치를 주어 놓고 시작하는 것이 동편제다.표현은 그 다음이다.비록 슬픔과 통한(痛恨)을 노래하더라도 음악 그 자체가 그런 감정 표현 욕 구마저 넘실 딛고 타고 넘을 수 있는 우렁차고 딱딱하고 높은 성음,성음(聲音)이라기 보다는 공력으로 얻어내는 성음(成音)이야말로 동편제가 추구하는 음악의 필요조건이다.감각이나 표현보다는 음악 자체의 절대적인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동편제의 소망이다.이에 비하면 서편제는 감칠맛 나는표현력을 중시하고 있다.그런데 서편제 소리 하는 사람들 가운데일부는 근자에 올수록 기쁨 보다는 슬픔,하물며 카타르시스를 지나 사람의 마음을 직접 극도로 상한(傷寒)시키기까지 에 이르는것이 예술의 목적이고 가치인듯 오직 한(恨)을 과장하고 강조한다.내 짐작에는 서편제 소리의 표현적 가치만 하더라도 한 보다는 신명(神明)과 해학(諧謔)에 있다.
뿐만 아니다.한을 너무 세게 강조하려다 보니 한 그 자체가 너들너들 분칠과 색칠로 더러워져 가고 있다.이 점을 발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영화『서편제』를 계기로 서편제를 더욱 좇아가다가 우리 판소리 음악의 본 가닥인 우렁찬 동편 제를 오히려발견하게 된것은 민족적인 축복이다.그리고 문화적 반환점이기도 하다.반환점은 반환점이되 본래의 코스로 돌아가자는 반환점이다.
***선 생님은 왜 꼭 남원만 고집하느냐고 물었더니 강도근옹은 대답한다.
『물었으니까 내 말허는데,남원에는 다른 특성은 없고 판소리가특성이에요.선생들도 많았고.판소리 선생만 아니라 협률사(協律社)때문에 연극하는 선생들도 많았어요.아,나도 협률사 따라 그때는 온 나라를 겁다나게 댕겼지요.남원이 그 협률 사 조종(祖宗)아니요? 그때부터 남원이 국악하면 으뜸이 되었어요.전국의 국창.명창들이 죄 남원 와서 날렸어요.판소리는 수백명 모아놓고 무대에서 해야 살지 조그마한 방안에서 해서는 살들 못히여.그래야 명예가 커지고 사람도 커지지.그런 데 이런 선생들이 쏵 다지금은 죽고 없어요.동편제 판소리는 내가 5대요.송흥록씨.송우룡씨.송만갑씨.김정문씨 그 담이 나요.지금은 나 하나 딱 남았어요.김소희는 몸이 아프고.
***이 남원서도 동편제 없애버리고 서편제를 맹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왔어요.그러다가 나한테 들켰어요.내가 남원국악원에서나와 버렸어.나와서 따로「강도근후계자양성소」라는 간판을 걸고 공부를 가르쳤어요.그러는데 남원 사람들이 여기(관광단지)에 다이 집과 방을 일전 한푼 안받고 만들어 주었어요.강도근이가 동편제 소리 하나 때문에 돈도 마다하고 남원에서 제자들만 가르치니 도와주자,이렇게 된 것이요.지금 가르치고 있는 제자가 스무명인데,남원 뿐 아니라 각처에서 왔지요.여자는 좋은 놈이 있는데 남자가 드물어요.동편제는 남자라야 기운을 쓸수 있응께 성음이 나오지.통성음은 남자가 써야지.계면 같은 거는 여자도 좋고. 나는 남원을 못떠나요.동편제 6대를 맹그는 것은 내책임이요.7대는 내가 모르겠고.배우려면 남원 와서 배우라고 해야지.』강옹은 올해 77세,무오(戊午)생이다.18세부터 판소리 공부를시작했다.그가 국사암에서 20년 독공(獨功)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농사철엔 집에 와 농사짓고 농사철이 지나면 절로 다시 돌아가곤 했다.그는 지금 판소리 흥보가로 무형문화재5호가 돼있다.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오전8시30분부터 오후5시30분까지 먼저 그가 부르면 그 다음에 제자가 따라부르는판소리 교육을 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선생님은 선대(先代)에 비해서 최고로 행복한 소리꾼이십니다.송만갑 선생이 판에 남긴 소리는 앵앵거리는 유성기 시대의 소리일 뿐입니다.현대 최고의 기술로 녹음한 선생님의 음반을 머지않아 온 세계 수백만 사람들이 찬탄하며 듣는 날이 올 것입니다.선생님이 한국의 동편제 소리의 실질적 시조가 될 것입니다.부디 건강해서 이미 넣은 수궁가.흥보가에 이어 심청전.춘향전.적벽가도 마저 판에 넣으십시오.』 극장에서 수백명을 앞에 놓고 판소리를 하던 때가 문제가 아니다.전자미디어 시대를 맞아 2천년전 세계의 벽지였던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예수의 종교가 태어나서 그랬듯이,한국의 남원 땅에서 동편제 판소리라는 강도근의 이름과 결부된 획기적 인 창법의 음악이 온세계로 번져나갈 것을 생각하며 나는 이 말씀을 그에게 드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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