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주부통신>32.캐나다 PEI-빨강머리앤의 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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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는 캐나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2만명의 섬으로 캐나다 9개주와 2개 영토중 가장 작은 주다.대륙과는 비행기,또는 차를 싣고 건너는 페리로만 연결되는 이 섬은 붉은 흙과 감자의 특산지로 유명하다.
이 섬의 주요산업은 어업.농업 그리고 관광산업이다.평화로운 농촌풍경과 따뜻한 수온의 바닷가도 관광객을 끄는 요소지만 그보다 큰 매력은 몽고메리 여사다.
1874년 한 여자아기가 이 섬에서 태어났다.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아이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넓다란 농장에서 노인들과 지내는 어린이에게 가장 그리운존재는 친구였다.옷장에 달린 볼록한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으로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걸어서 15분거리에있던 사촌의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외로움에 절어 상상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소녀는 자라서 작가가 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빨강머리 앤』으로 알려진 작품,『초록색 맞배지붕의 앤』을 쓴 루시 머드 몽고메리가 바로 그 사람이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관광책자 첫머리에는 『빨강머리 앤』과 작가에 관한 관광노선이 나와있다.가장 눈길을 끄는것은 초록색 지붕의 이층짜리 부유한 농가로「초록색 맞배지붕」의모델이다.1936년 캐나다 정부가 사서 현재까지 보존 ,유지하고 있다.모든 방을 책의 묘사에 걸맞게 그 시대의 물건으로 꾸며 놓았는데 매일 평균 5천명 정도의 관광객이 들르고 있다.
관광객을 모아놓고 작가.작품.집에 대한 설명을 하는 안내원 멜에게 물었다.『빨강머리 앤』의 세계적 인기는 무엇 때문이냐고.그는 이 책이 16개 국어로 번역돼 있다는 점,또 불같은 성미 때문에 자주 곤경에 처하지만 원래 착한 성품인 주인공의 매력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초록지붕집 근처에는 작가가 자주 걷던숲과 오솔길이 설명판과 함께 공개돼 있는데 몽고메리는「유령이 나오는 숲」「연인의 길」같은 정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 밖에 작가가 살던 집,자주 찾았던 친구의 집,계속 퇴짜맞으며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던 우체국 등에도 끊임없이 관광객의 발길이 닿고 있다.
몽고메리는 지극한 효손이었다.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느라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모셨다.결혼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인 36세에 했다.
발표한지 90년이 지난후에도 첫 작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것도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한 작가가 고향의 얼굴을 그토록 바꾸어 놓았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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