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균형외교만이평화 가져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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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북한.베트남등 아시아 공산주의 국가들의 외교관계가 예상보다 훨씬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들은 예전보다 이념을 덜 중시하기 시작했으며 외교에서도 세력균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베트남은 美.中과 관계를 개선하고 아세안가입을 위해 적극적인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북한은 핵카드를 이용,미국과 핵문제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워싱턴에 급속히 접근하고 있다.
최근에는 리펑(李鵬)총리의 한국방문이 성공리에 마무리됐는데 베이징(北京)이 서울과 갈수록 밀접해지고 있는 것은 중국의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방증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면 이같은 변화를 몰고온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아시아 공산국간 이념적 차이를 들 수 있다.
실례로 中.베트남은 이념분쟁으로 갈라섰고 中.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인해 이념적 갈등을 겪고있다.이념을 중시하는국가일수록 자신의 이념만이 정통이며 다른 나라는 비정통,심지어반도(叛徒)라고 몰아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한때 「동지」「형제」로 부르면서 더이상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수 없을 정도였으나 등을 돌리자 서로 총칼을 들이대고 있다.
둘째로 세력균형만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이를 가장 먼저 인식한 국가라 할수 있다.미국이 수십억달러의 대가를 치르면서 북한과 核문제를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도 한반도 정책에 있어 세력균형 유지를 위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은 중국의 이같은 정책을 실시하는데 도움이 됐을 뿐아니라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대해 느꼈던 무거운 부담과 의무에서 벗어나게 했다.
북한도 최근 이를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핵문제 발생시 손바닥을 뒤집어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던 북한의 절묘한 연기는 결국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궁극적으론 수교하기 위한 길을 닦기 위한 것이며 중국만이 유일하게 북한에 영 향력을 행사한다는 옹색한 입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할 수 있다.
한국은 소리소문 없이 이들 국가보다 더 「균형외교」를 실시하고 있다.다변적이고 균형적 외교정책을 실시해야만 우방이든 적대진영이든 모두에 영향을 줄수 있고 주도권 행사를 가능케 함을 깨달은 것이다.
변화를 몰고온 마지막 요인은 국가간 이익충돌에 따른 크고 작은 제약이다.냉전시기에는 전쟁에 따른 안전이 제약요소로 작용했지만 냉전 종식후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변화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한국전쟁을 제외하곤 중국과 한국간 이해 상충은 극히 적었으며 일본과 비교할 때는 더욱 그렇다.현재 한.중양국 경제는 이해상충적 측면보다는 상호보완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두나라간의 접근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는 것 이다.
이와함께 한.중 양국의 빠른 접근에는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우호적이고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감정과 민족감정도 빼놓을 수 없다.
외교는 물론 국가전략과 상호 이익이 우선되는 것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우호적인 민족감정이 기초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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