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를찾아서>"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장정일 신작장편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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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재즈는 불협화음과 장식음의 변주,그리고 돌발적인 즉흥연주가특징이지요.가장 동적이고 운신의 폭이 넓은 음악입니다.아프리카흑인음악,아메리카 토착음악,유럽의 클래식 등이 섞여 넓은 모체를 형성한데다 소재가 소진할 때마다 새로운 음 악을 수혈했기 때문이지요.50년대부터 재즈음악가들은 아프리카.남미는 물론 인도나 극동아시아음악과도 접목을 시도해 왔거든요.』 장정일의 신작장편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미학사刊)는 이같은 재즈 음악의 특성을 본뜬 실험소설이다.무정형 무국적의 재즈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문화를 상징한다.장씨는 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재즈의 힘을 읽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양 식을 재즈에서 찾으려한다. 『재즈는 나를 버리라고 말하는 음악이에요.「나」를 버리고 「다른 나」와 손잡자는 거지요.그러기 위해서는 열려 있는 정신이 필요하죠.』 장씨는 재즈적인 문화는 획일화된 정체성에 대한집착에서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그래서 이 소설은 사회통념을 곳곳에서 배신하는 줄거리로 이어진다.
주인공 나는 지방대학 신학과에 다니면서 구멍가게 주인집 딸을짝사랑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그래도 나는 평생 그녀의 주변에 남아 있고 싶어서 주변사람들을 경악시키며 못생기고 「벌통」이란 별명이 붙은 두살 연상의 그녀 언니와 결혼 한다.
결혼을 해서도 나는 그 제도에 편입되진 않는다.마음은 늘 처제에게 가 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고 정관수술을 하기도 한다.
집 밖에서도 그는 늘 거꾸로 논다.스스로 섹시하다고 생각하는처제 친구의 동침 요구를 거부하고 돌아가는 길에 사창가에서 늙은 매춘부와 몸을 섞는다.한마디로 주인공 나는 늘 세상과 어긋나는 인물이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몇몇 인 물들에게서도 이 어긋남은 발견된다.주인공의 직장 상사인 남부장,처제,이웃집여교사 등은 세상과 자신들 사이의 빙판 위에서 계속 미끄러지는인물들로 묘사된다.
소설 속의 시간과 공간,문장의 형식도 어긋남의 연속이다.이 소설 속에는 『열시에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아홉시 뉴스가시작되고 있었다』와 같은 시간의 어긋남,『아침에 세들어 살고 있는 지하실방을 나와 저녁에 3층 단칸방으로 돌 아갔다』와 같은 공간의 어긋남이 계속된다.또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탁자에 놓았다』와 같은 통사구조의 파괴가 반복되며 처제의 몸매를 연상하는 데서도 『1백68㎝의 키에 35-24-3446㎏』이라 했다가 다음 순간 『1 백74㎝의 키에 34-25-35 50㎏』으로 뒤바꿔버리는 실루엣의 파괴가 되풀이 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때로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고 인간을 억압하기도하지요.일상의 모든 실루엣을 파괴하는 글쓰기를 하게된 것도 이같은 의도였습니다.』 ***파격속에 담긴 의미 이 소설은 통상적인 서사구조를 따라가며 메시지를 읽어내려 하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모자라는 한 젊은 남자의방황기에 불과하다.그러나 재즈음악을 듣듯 소설의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을 유기적인 연관성 속에 서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비로소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유혹과 선동의 목소리가들리는 것이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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