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鄕길잃은 철새들 경비행기로 길안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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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철새들의「겨울여행」을 인간이 인도하는 시대가 왔다.
최근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보도한 캐나다의 조각가 빌 리슈만(55)은 기상천외한 철새여행의 길잡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기러기와 학의 겨울여행을 이끄는 리더 학(鶴)이 환경오염과 인간의 사냥으로 죽거나 다쳐버려 나머지 학들이 제 갈길을 못찾자 기러기 모양의 초경량 비행기를 타고「인간철새」가 되어 직접 새들을 이끌고 있다.
철새들이 V字 편대로 나는 모습이 점점 사라지자 그는 그 이유가 궁금했고 곧 조류전문가들의 도움으로 鶴이 안전하게 겨울을보낼 수 있는 번식지로 이동하는 방법을 전수받지 못해 위험한 장소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의 구조작전에 들어갔다.
생물학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새등 온갖 동물에둘러싸여 자란 그는 74년부터 행글라이딩을 시작,84년에는 오토바이 엔진을 부착한 글라이더로 기러기떼에 접근했지만 기러기들은 도망가 버렸다.
87년에는 이륙에 실패,오른발이 부러지기도 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28마력짜리 엔진을 단 최대시속 40㎞의 초경량기를개발했다.
그러나 문제는 기러기들에게 무사히 접근하는 방법이었다.그는 고심 끝에 30년대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래드 로렌츠박사가 발견한 이론을 적용했다.기러기.고니.학등 커다란 철새들은 알에서 깨어난 뒤 처음으로 마주친 큰 물체를 어미 로 알고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어미가 품고 있는 거위 알에 비행기의 엔진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려줬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 10월 최초로 18마리의 철새 편대를 이끌고 1주일만에 5백60㎞를 날아 목적지인 미국 버지니아州에 무사히 도착하는데 성공했다.그리고 이중 16마리가지난 4월에 리슈만의 정원으로 되돌아왔다.
철새들로 하여금 그들의「이동통로」를 터득하게 한다는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지난 9월말에는 39마리의 대편대를 이끌고 지난해보다 더욱 남쪽인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州의 호수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金玄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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