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참패 클린턴 APEC行 무거운 발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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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로 향하는 빌 클린턴美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겁다.
지난해 시애틀정상회의는 그가 취임한 지 9개월 밖에 안돼 평가가 시기상조이기도 했지만 北美자유무역협정(NAFTA)법안 통과에 성공한 뒤라 당당한 기세였으나 이번은 상황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내치(內治)실패로 무능력한 대통령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대외문제에서도 아시아국가들로부터 일관성이 없다는 눈총을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선거참패 등으로 악재가 겹쳤다.
아시아국가들은 이른바 「미국정책의 U턴」현상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6월 對중국 최혜국(最惠國)대우(MFN)경신을 앞두고 중국의 인권문제를 강조했다가 중국의 대응보복경고에 직면하자 이를 포기하고 조기 경신을 결정했다.
미국의 국제인권정책 「실패」는 인권문제가 산적한 아시아국가 지도자들로부터는 내심 환영을 받지만 이 지역 인권운동가들로부터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일(對日)무역협상에서 일본정부로부터 「상당한 굴복」을 얻어냈다는 자화자찬에도 불구,日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슈퍼301조 적용 포기 등으로 실제 얻어낸 것은 하나도 없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또 對북한핵문제협상에서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무기 연기,당초의 자세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으로지적되고 있다.
특히 북한핵문제는 클린턴이 끈질긴 국제협상에 무능하다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더욱이 美중간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나고 클린턴의 96년 재선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아시아국가의 지도자들은 그의 지도력의 지속성과 대외정책연속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같은 반응을 의식한 듯 11일 APEC정상회의 참가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나면서『미국은 국제인권 확대와한반도비핵화(非核化)를 향한 기존정책을 확고히 추구할 것이며 정상회의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아세안의 역내(域內)특성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배제돼야 한다는 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의 끈질긴 주장▲중국.인도네시아의 인권문제▲아직도 불투명한 북한의 핵문제 등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계속 부담으로 남아 있다.
한편 회의참석차 떠나는 클린턴에게 『클린턴정부와 협력은 하겠지만 타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뉴트 깅그리치 차기 하원의장의 으름장도 그에게는 괴로운 이명(耳鳴)으로 남아 있다.
[워싱턴=陳昌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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