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편 남북협력 자신감-김대통령의 對北經協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11일 낮 북한과의 경협(經協)문제와관련,『성급히 추진하지는 않겠다』면서 『북한이 거부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날 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필리핀 기자의 질문에 주저없이 이런 답변을 했다.북한이 우리의 경협제의를 거부한데 대해『북한이 겉으로는 경협을 거부하지만 결국 도움을 청할 곳은 우리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金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실이나 외무부 당국자들도 한결같이 이런 답변을 하고 있다.그러나 일각에서는『과연 우리 정부가 핵과 경협의 연계고리를 풀면서 북한의 완강한 거부자세를 염두에 두었을까』『북한은 전혀 준비가 안돼 있는데 우리만공연히 흥분해 떠든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혹은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이 그동안 혼선을 빚어온데다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여러 채널을 점검해본 결과 정부측은 경협발표 당시 북한측이 호응해 올 것으로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게 사실인 것 같다.북한의 지도체제가 아직 공식화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그동안의 대남 강경자세를 전환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 요하다는 사전 검토가 있었다는 말이다.
다만 우리정부로서는 金대통령의 亞太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 참석을 앞두고 북한과의 관계를 여전히 묶어놓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와의 경제.안보협력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매듭을 풀고 출국하려 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답변에서『정부는 필요에 따라 통제도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경협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수위와 속도를조절하면서 경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당국자는『실제로 북한의 속셈을 알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북한이 공식적으로는 경협을 거부했지만 우리 기업들의북한투자를 적극 유인하는 낌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기업들의개별접촉때 북한당국이 프로젝트나 상담(商談)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봐야 의도를 분명히 알수 있다는 얘기다.현단계로서는 우리 기업의 개별투자에 대해서는 북한이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태국주재 대사관에서 아시아지역포럼(ARF)과 APEC참여를 희망하는 언급이 나왔다.동북아지역의 평화와안전을 보장하는 논의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긴요하기 때문에 참여를 희망한다는 상당히 논리적인 참여의사 표명 이었다.우리정부는 이미 북한의 APEC참여를 희망하면서 북한이 원할 경우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북한이 경협은 거부하면서 APEC에는 참여한다는 묘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종합해 좀더 지켜봐야 분명한 결론이 나올것이다.정부는 일단 경협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북한이 개혁과 개방,국제화의 길로 나오도록 상황과 분위기를 적극 조성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사회간접자본등이 제대로 투자 되지 않은 곳,더구나 정치체제마저 불안한 곳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다.
시간은 우리편이며 기다리면 북한은 결국 우리쪽이 손을 내밀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마닐라=金斗宇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