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촛불 켜고 기사 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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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청은 1일 기자실의 전화와 인터넷망을 차단한 데 이어 3일 저녁부터 전기까지 끊었다. 3일 밤 서울 미근동 경찰청의 출입기자들이 촛불을 켜 놓고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왼쪽부터 본사 이철재, 세계일보 이태영, SBS 김흥수, 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경찰청은 3일 오후 8시 서울 미근동 청사 본관 2층 기자실의 전원을 끊었다. 이에 따라 기자들은 이날 촛불을 켜고 노트북을 이용해 기사를 작성했다. 노트북 배터리가 방전된 일부 기자들은 복도에 있는 전기 콘센트에 연결해 충전하는 등 애를 먹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까지 기자실을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기자들이 불응하자 1일 오후 전화선.인터넷망을 차단했다. 기자실에 비치된 팩스와 컴퓨터도 없애버렸고, 보도자료와 일일 상황보고 배포도 중단했다. 경찰은 기자들이 계속 철수하지 않을 경우 6일 저녁 개인 사무물품을 박스에 넣어 빼내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국방부도 이날 5일까지 기자실을 비우라고 공식 통보했다. 국방부 기자단 역시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경찰청에선 15만 명에 이르는 전국 경찰을 지휘하고 민생과 치안에 대한 정책을 결정한다. 이택순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핵심 지휘부가 모여 있다. 기자들은 국민을 대신해 경찰청의 잘못된 정책을 감시하며 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취재해 왔다.

이 때문에 경찰 담당 기자들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기자실 폐쇄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언론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라고 판단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대민 접촉이 많은 경찰서에선 인권침해와 강압수사 및 비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부산에선 3일 대형 사행성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던 일선 경찰서의 간부가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기자실 폐쇄를 제외하고는 당초 정부가 공언해 온 취재 협조나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월요일마다 열렸던 경찰청장의 기자 간담회는 지난달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9월 기존 기자실을 강의실 형태의 브리핑룸으로 바꾼 서울 강남경찰서의 경우 지금까지 단 한 차례 브리핑이 열렸을 뿐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요즘 국정홍보처로부터 자주 독촉 전화를 받는다. 기자실 폐쇄를 서두르라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한 정부 부처의 홍보담당자는 "홍보처가 현 정권 임기 내에 기자실을 폐쇄해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마무리하겠다며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현 정부의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재진 한양대(신문방송학) 교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의 목적은 브리핑의 활성화라고 하는데 실제론 더 퇴색했다. 궁극적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이철재.천인성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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