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사교육 시장이여, 더욱 번창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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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사의 원리는 열사(熱沙)의 나라에 스키어들을 불러 모을 정도로 집요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두바이에 지어진 스키장이 관광명소가 돼 떼돈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학원 장사는 누워서 떡 먹기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넘쳐난다. 당연히 그 방법을 일러 주는 학원은 문전성시다.

학원비는 왜 비싼가. 답은 간단하다. 수강을 원하는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이름이 좀 알려진 강사의 경우 단 몇 번의 지도에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수강료를 좀 낮춰 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학원으로선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비싸게 받아도 손님은 넘치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에도 손님이 몰리는데 그걸 낮춰 줄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학원이란 이름의 사교육 시장은 이미 충분히 번창했다 싶었다. 하지만 교육부 관리들 눈에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학원에 또 하나의 큰 선물을 안겨 줬다. 이른바 ‘수능 등급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논술학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올해 새로 도입된 수능 등급제 덕분에 학원들은 더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수능 성적이 몇 등급에 속할지 몰라 남은 논술시험에 목을 매고 있다. 결국 정부의 탁상행정 탓에 학생들과 학부모만 죽어나는 것이다.

논술학원들이 돈을 갈퀴로 긁자 교육부가 나섰다. 일선 교육청을 동원해 고액 수강료 단속에 나선 것이다. 강남 논술학원의 경우 한 달에 22만원을 넘으면 고액으로 간주한다. 걸리면 학원등록이 말소되거나 세무서에 통보될 수 있다.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못된 학원을 혼내 주기 위해 이런 규제를 만들었다. 정말 고마운 정부다. 서민들을 위해 학원 수강료까지 단속해 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이런 무서운 규제가 있는데도 학원들이 별로 두려워하지 않으니 말이다. 학부모들도 그렇다. 비싼 학원비를 내면서도 누구 하나 당국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수강료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고맙기는커녕 참으로 고약한 정부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큰 근심을 안겨 줘 학원으로 내몰고 이제 와선 비싼 수강료를 받는 학원들을 벌주겠다며 나서다니.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다. 공무원이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에게 병을 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뒤늦게 약을 준다고 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비싼 학원비가 공무원 몇 명의 현장조사로 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규제를 만들고, 지금은 그 엉터리 잣대로 사교육 시장을 다스리겠다고?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주는 것이다. 그래야 대학이 자신들의 잣대로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다. 미대에 갈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림 실력이다. 그러나 아직도 수능성적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음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그런 잣대를 대학에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리들은 학원 탓에 공교육이 땅에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의 끊임없는 간섭이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한 사교육 시장은 죽지 않는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나 못 가르치나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잘릴 염려도 없다. 그래서 열성을 다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학원 강사들은 어떤가. 이들은 학생들의 성적을 높여 주면 많은 보수를 받는다. 족집게 소리라도 들으면 단박에 주머니가 두툼해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보따리를 싸야 한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당해 낼 수 없는 이유다. 사교육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교육은 정부의 간섭을 먹고 자란다, 이번 수능 등급제처럼. 따라서 정부가 대학에 자율권을 주지 않고 시시콜콜 간섭하는 한 학원들은 더욱 번창할 것이다.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