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신세대>드럼연주자 김선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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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러면 안되는 데.아는 사람들이 잘 하지도 못하면서 폼만 잰다고 할텐데.』 드럼을 두드리는 모습을 찍을 때는 아무런 스스럼이 없던 김선중(金善中.26)씨는 악기앞에서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에는 영 쑥스런 표정이다.金씨는 세션맨(SessionMan),가수들의 음반녹음과 공연에서 전문반주를 하는 드럼연주자 다.라이브 무대나 레코드회사 녹음실은 웬만한 가수보다 익숙하지만 이름을 내밀고 조명아래 서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다.가장최근 것으로는 「넥스트」의 음반에 그의 이름이 나오지만 金씨 자신은『연락오면 가서 돈받고 일하는 게 세션맨』이라 며 익명속에 숨고 싶어한다.지난 일요일에는 이승철과「부활」의 조인트 콘서트 무대에 섰다.연주자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솔로부분을 이번 콘서트에선 주인격인「부활」의 김성태씨에게 양보했다.
『고2때 딥퍼플(Deep Purple)의 이언 페이스가 치는드럼솔로를 들었어요.런던 라이브 앨범이었는데 그때 나도 저렇게돼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루 세 시간씩 연습을 시작했지요.』 밴드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한 것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집안 어른들이 트럼펫처럼 부는 악기를 하면 폐가 나빠진다고 반대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작은북.중3때 한창 인기가 있던 송골매를 본떠 보컬그룹을 만들기도 했다.고교를 마치고 부모님이 악기 사라고 준 거금 3백50만원을 들고 상경,록그룹 「무당」의일원이 된 것이 본격적인 음악공부의 시작인 셈이다.1년남짓 활동한 「무당」이 해체된 후 여러 그룹을 전전하다 88년 「이선희와 한강」으로 세션맨 생활을 시작했다.초창기 조용필처럼 그의前세대 연주자들의 꿈이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것이었다면 그 무렵은 안정된 수입과 연주기회를 보장받는 세션맨이 각광받기 시작한 때였다.록음악으로 시작했지만 이름이 알려진 요즘은 록이다,트로트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불려다닌다.연주자의 층이 얇은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따로 만든 악보없이 그저 「무난하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현실이 은근히 맘에 안 드는 눈치다.
대충 「무난하게」만 하면 되니까 연주자들은 더이상 노■하지 않는 다는 설명이다.자신이 혹시 「잘한다」고 인정을 받는다면 그「무난하게」에 맞춰주기 때문일 거라고 한다.
『남들 얘기 들으면 음악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던데 제 경우는 집에서 큰 반대도 없었고 순조로운 편이지요.』 불안정한 생활을 이해해주는 아내와 세살배기 딸의 가장인 지금의 생활이 제법 만족스런 표정이다.연주자로서는 욕심이 많다.외국처럼 한 가수하고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여건은 못되지만 『내면의 연주,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연주를 환갑 전 에 녹음하고 싶다』고 한다. 글:李后男기자 사진:申寅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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