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버디' 이현세 - '신의 물방울' 아기 다다시 남매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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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담을 마친 아기 다다시 남매와 만화가 오키모토 슈, 이현세씨(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했다. 아기 남매는 선글라스나 모자를 쓰는 이유에 대해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쑥스러워서”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만화가의 만남이라기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는 ‘골프광’과 ‘와인광’의 만남이었다. 골프만화 『버디』로 200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수상한 만화가 이현세씨와 인기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에 이어 최근 와인에세이 『와인의 기쁨』을 펴낸 일본의 아기 다다시(亞樹直) 남매, 만화가 오키모토 슈가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대담을 했다. 공교롭게도 “소주파라 와인은 잘 모른다”는 이현세씨와 “골프는 만화로만 즐겼다”는 아기 다다시 남매는 서로에게 골프와 와인의 매력을 풀어놓으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만화의 힘’에 공감했다.

#와인과 골프의 접점, 사람

이현세=반갑다. 개인적으로 ‘소주파’라 와인의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한다. 만화 『신의 물방울』을 접하고 나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리는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참가할 기회가 있어 가끔 보르도 인근에 가는데 전에는 소주를 싸 갖고 가 만화가들과 마시곤 했다. (웃음) 요새는 『신의 물방울』 덕분에 보르도 와인을 맛본다.

아기 다다시 A(아기 다다시는 두 사람의 공동필명. 앞으로 누나는 아기A, 동생은 아기B로 표기)=우리 작품을 보고 와인에 관심을 가지셨다니 기쁘다. 한국의 대표 만화가로서 『신의 물방울』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다.

이=일단 형식 면에서는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점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한국만화의 경우 아직도 스토리 위주의 만화와, 정보를 주기 위한 만화가 뚜렷이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신의 물방울』은 그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돼 신선했다. 또 만화에 등장하는 와인에 대한 표현, 와인을 마신 후의 느낌 묘사 등이 굉장했다. 와인은 어떤 땅과 기후에서 재배됐는가, 어떻게 보관됐는가에 따라 다른 풍미를 지닌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람을 와인에 비유했을 때는 어떨까, 즉 이현세라는 사람은 2007년 11월 과연 어떤 향과 맛을 지니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

그림<左>=이현세씨가 그린 아기 다다시(남동생)의 캐리커처, 그림<右>=오키모토 슈가 그린 이현세씨 캐리커처.

아기B=나도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와인은 인간과 아주 닮았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열리는 나무들은 100년 넘은 것들이 많다. 젊은 나무들의 경우 포도가 많이 열리지만 맛은 좋지 않다. 나무들이 나이가 들수록 약한 송이들은 떨어져나가고 포도의 수는 줄어들면서 성숙한 포도들이 생산된다. 사람이 성숙해 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골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마실 때마다 와인의 맛이 달라지듯 골프 역시 10년, 20년을 쳐도 같은 경기가 되풀이되는 경우가 없다. 내가 이번에 『버디』라는 골프만화를 그렸는데, 골프선수들의 영원한 꿈이 버디다. 아직까지 18홀을 모두 버디로 잡은 선수가 없다. 선수들의 실력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데 아직 단 한 명도 못했다는 것은 골프가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세계라는 것이다.

#만화로 연 멋진 신세계

이=두 분은 실제로도 와인에 깊이 빠져 있다고 들었다. 나도 실제로 골프광이다. 어떤가. 두 분은 골프를 좀 즐기시는 편인지?

아기B= 몇 번 쳐보긴 했는데 잘 치진 못한다. 일본에도 유명한 골프만화가 많아 어릴 적 만화를 보면서 고장 난 우산대를 골프채 삼아 휘두르곤 했다. (웃음) 만화 속에서 소년이 주인공이었는데 골프를 치면서 산도 넘고 강도 건너고 하면서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을 하나씩 헤쳐나간다. 그림을 통해 그런 모험을 가능하게 해 주고, 골프라는 경기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만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그렇다. 나도 사람들이 내 만화를 통해 그런 즐거움을 맛보길 바란다. 그런데 이번에 에세이 『와인의 기쁨』을 내놓았다고 들었는데, 만화가 아닌 에세이를 펴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기A=『신의 물방울』을 통해 많은 한국인이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많은 사람이 와인을 즐기려면 등급이나 포도밭 등 와인과 관련된 지식들을 알아야 한다, 또는 와인을 마시고 나서 만화 주인공처럼 멋있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조금 가볍게 와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와인은 친근한 것이고, 친구·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이=만화가 오키모토씨는 『신의 물방울』을 그리기 전 와인에 대해 잘 몰랐다고 들었다. 이제는 와인을 즐기게 됐는가.

오키모토 슈=(수줍어하며) 아직 잘 모른다.

아기A=처음에는 이 친구가 와인을 전혀 몰랐지만 이제는 전문가 수준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역동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나도 『버디』에서 최성현이라는 여성 스토리 작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여자 골프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20대 초반 여성들의 감수성을 알려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전혀 골프를 못 쳤다. 그래서 “나랑 일하려면 일단 한 달이라도 골프를 배우라”고 했다. 지금은 나보다 더 골프를 좋아한다. (웃음)

#출판 만화의 미래

와인과 골프, 그리고 만화의 힘에 대한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출판만화 시장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들은 “출판만화가 가진 상상력의 파워는 영원할 것”이라며 “좋은 콘텐트를 생산하는 것만큼 투명한 콘텐트 유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기B=‘만화대국’인 일본의 경우에도 만화시장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만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 비정상적으로 확대됐던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거품이 빠지고 나면 진짜로 좋은 작품들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만화를 그리는 우리가 할 일은 만화의 질을 점점 더 높여 독자들이 읽고 나서 ‘손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한국은 일본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만화시장의 축소’라고 말하지만 사실 인터넷 덕분에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동시에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만화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다. 문제는 ‘만화는 공짜로 보는 것’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지난 10년간 IT산업을 발달시키면서 저작권 문제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그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남았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김현동 중앙일보시사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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