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백악관의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재작년 건립 2백주년을 맞은 미국(美國)최고의 권부(權府) 백악관(白堊館)은 그 거주자들에게 전혀 상반된 두가지 이미지로존재해 왔다.그 하나는 레이건대통령 시절 그의 아들 론이 말한바「별 8개짜리 호텔」로서의 화려한 이미지며, 다른 하나는 존슨대통령 시절 그의 딸 루시가 술회한 바「외롭고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지 않으며 항상 뭔가를 두려워해야 하는 곳」으로서의 불안한 이미지가 그것이다.「매혹적인 감옥」「회칠한 무덤」이라 표현한 사람들도 있었다.들어가고 싶다해 서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백악관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곳이 화려한 이미지로만 남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백악관의 최대 재난은 1814년 제4대 매디슨대통령 시절 영국군(英國軍)에 의해 워싱턴이 유린됐을 때였다.대통령부부는 체포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벗어났고 대통령관저는 완전히 소실(燒失)됐는데 그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외벽(外 壁)을 희게칠한 것이 「화이트 하우스」로 불리기 시작한 계기였으니 그 또한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백악관이 미국의 가장 유명한 관광코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얼마전 난생 처음으로 미국관광을 다녀온한 노부부가 한장의 사진을 내보여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백악관 철책 바로 앞에서 클린턴대통령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기때문이다.알고보니 클린턴부부는 실물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마네킹에 불과해 웃고 말았지만 최고 권부 앞에서 대통령의 초상까지 멋대로 이용하는 저네들의 상혼(商魂)도 놀라웠다.초상권(肖像權)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연간 2백만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는 백악관의 경호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었다.
물론 경호 관계자들은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고 있지만,누군가 어떤 방법으로든 해를 끼치려 마음만 먹 는다면 그 많은 관광객 때문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백악관 지붕 곳곳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팅어 지대공(地對空)미사일도 결정적 순간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것이다.지난 9월의 경비행기 추락사건 과 함께 30일 발생한 총격사건은「만사는 불여(不如)튼튼」이란 우리네 속담을 일깨워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