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교수의비즈니스협상학] 상대편 내분 가능성을 파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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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과거 미국의 반도체 반덤핑 관세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협상하러 워싱턴에 가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 정부 대표단이 늘 묵는 워터게이트 호텔로 여러 로비스트들이 몰려 온다. 이들은 온갖 정보를 물어다 준다. 미국엔 등록된 로비스트만 3만 명이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유수의 PC업체들도 제 발로 찾아와 한국 측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 PC업체들은 한국 정부가 USTR과의 협상에서 이겨 값싼 한국산 반도체를 계속 쓰길 원하기 때문이다.

 고차원의 협상을 하려면 적 속에서 아군을 찾고, 적을 분열시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협상의 세계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1995년 USTR은 중국에 ‘스페셜 301조’를 발동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압력에 등 떠밀린 USTR이 중국 정부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무역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일본이나 한국과 달리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받아쳤다. “무역 보복을 하면 미국에서 대량 구매하려던 항공기와 통신장비를 유럽에서 사겠다”고 나온 것이다. 이런 중국 측 반응에 미 보잉과 AT&T는 “불법 복제 콤팩트디스크(CD) 몇 개 잡겠다고 수십억 달러짜리 거래를 망치려느냐”며 들고 일어났다. 이후 싸움은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아닌, 마이크로소프트 대 보잉 · AT&T 사이의 힘겨루기로 번졌다. 결국 로비력이 훨씬 강한 후자가 승리했고, 미국은 스페셜 301조를 슬며시 철회해야 했다.

 국제통상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협상도 마찬가지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항상 상대의 속사정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상대 기업의 과거 협상 사례와 내부 갈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합작 협상이건 인수합병(M&A) 협상이건 상대방 내부엔 항상 반대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같이 상대방의 잠재된 내분 가능성을 유리하게 활용하려면 슬쩍 협상 파기 의사를 내비쳐 협상판을 뒤흔들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부 갈등이 폭발해 스스로 약점을 내보인다. <끝>

 안세영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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