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했던 시절, 공연중 검 놓쳐 관객 앞에 꽂히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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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람들은 도구를 사용했다. 검(劍)은 그 도구 중 단연 으뜸이다. 언제인가부터 사람들은 검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마음을 베는 활인검은 검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사람을 살린다. 죽임을 요할 때 죽이고, 살리고자 할 때 살린다. 21세기에 이 활인검의 의미를 찾아 수련을 떠난 한 여검객이 있다. 해동검도 공인 5단의 윤자경 단장이다. 그녀에게 검은 어떤 의미일까.

“검은 저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에요.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15년간 검만을 만져왔고, 죽는 날까지 검무(劍舞)를 하고 싶다는 윤자경 단장. 그녀에게도 혹독한 시련이 있었다.

“교만이 지나쳤던 시절이 있었어요. 검을 다루는 것에 너무 자신이 있었죠. 그때 미국 공연을 갔어요. 미국 공연에서 검무를 추다 검을 놓쳤어요. 그 검이 한 관객 앞에 꽂혔어요. 그러자 물론 관객들은 놀라서 다 나가버렸습니다. 그 때 검이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어요.”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성이 지배적인 무도계에서 여성으로 검도의 길을 걷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여자가 검을 만지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되죠. 게다가 검무를 한다고 하니 검도계와 무용계에서 모두 절 비난했죠. 그래서 무용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어요. 우리나라는 눈에 보이는 증명서에 민감하니까요.”

현재 윤자경 단장은 NY퍼포먼스라는 검무팀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검무를 이용한 한국적 퍼포먼스를 창조하겠다는 큰 포부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모았다. 무도인, 비보이 등이 윤자경 단장의 꿈에 반해 모인 것이다.

“전통은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려오는 것만이 전통이라 생각하면 발전이 없죠. 전 한국에 검무를 이용한 새로운 퍼포먼스를 만들고, 이것을 새로운 전통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검은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말. 어쩌면 윤자경 단장은 이미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는지 모른다. 사람은 때때로 안정된 삶을 바라는 욕심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곤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인생을 살아가며 빛바랜 흑백영화처럼 가끔 후회로 돌아온다. 자신이 진정 바라는 꿈을 위해 청춘을 불태우는 사람들. 검 끝에 녹아든 그들의 혼은 오늘도 꿈을 향해 불타고 있다.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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