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낙동강오염을벗긴다>9.금호강 일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금호강은 한마디로 물이 없는 죽은 강이다.
맑은 물도 괴면 썩게 마련인데 하물며 물이 없는 강이 썩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금호강의 하천유지수를 확보하기 위해 임하댐에 도수로(導水路)설치공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향후 인구증가추세를 감안한다면 오염은 여전할 것이다.
우선 금호강의 수리권(水利權)이 어디 있는가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환경권인데,금호강의허리를 싹독 잘라 영천댐을 축조하고 포항공단으로 공업용수를 보내고 있으니 금호강이 죽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이 아닌가.
본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물의 수리권인데「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지극히 단순한 자연법칙을 어기고 영천댐을 축조했으니 하천유지수가 말라버리고 상대적으로 환경오염의 부메랑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필연적 인 현상이다. 금호강이 처한 절망적인 환경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낙동강 상류지역 때문에 오염되고 있으니 공단도 조성하지 말고 생활하수도 내려보내지 말라는 식의 하류지역 주민들 주장은 어쩌면『우리가 살기 위해 너희들은 죽어야 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상류쪽 주민들만의 의지와 빈약한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수질오염을 방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낙동강의 수질을 보전하기 위해 무엇보다 정부의 투자.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투자와 규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규제만 강화해왔다.그것이 아이러니가 아닌가.
하천은 공공수역이라는 점에서 낙동강 수혜자와 오염원인 제공자가 공동책임을 지고 수질관리에 나서야 한다.이 원칙 아래 별도의 징세조례로 국고부담을 대폭 늘려 각종 오염방지시설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봐 낙동강에 수질오염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관계공무원들이 다치게 마련이다.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인데도 공무원을 속죄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상수돗물의 고도처리비용과 오염방지시설에 따른 예산확보가 어려운 만큼 정부가 구태의연한 틀에서 벗어나 과감한 국고지원을 우선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환경의식도 중요하다.『내가 오염시킨 물로 생산한 농산물이 밥상에 올라 결국 내 입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경북영천시창구동 금호강변의 조양각(朝陽閣)-.
영남 7대 누각(樓閣)의 하나인 이곳 조양각 아래엔 한때 여울을 이루며 흐르던 해맑은 물빛이 새까만 생활오수로 변해 역겨운 악취만 풍기고,우거진 송림과 은빛 모래와 자갈등 천혜의 절경은 어느덧 간데없이 황폐하기 짝이 없다.
금호강이 흐름을 멈춘지 올해로 15년째.주변의 문화유적은 극한적인 환경오염에 시들어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금호강은 정녕 돌아오지 않는가.
경북영일군죽장면가사리 갈밭산의 산간곡지(山間谷地)에서 발원,영천과 경산을 거쳐 대구 시가지 북서쪽을 비켜가면서 달성군다사면죽곡리 강정에서 장장 1백16㎞의 여정을 마치는 금호강은 다시 이곳에서 낙동강과 만나 남으로 유로(流路)를 튼다.
그러나 80년 이후 금호강 하류엔 물이 없는 마른내(乾川)가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바로 조양각에서 16㎞쯤 떨어진 상류에서영천댐이 물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영천군자양면성곡리 금호강 상류에 축조된 영천댐은 총저수량이 9억6천4백만t규모.이곳에서 방류하는 물은 4월부터 9월까지 농사철의 관개용수를 제외한 하루 26만t으로 이가운데 25만t이 포항공단의 공업용수로 보내지고 나머지 1만t이 이름뿐 인 하천유지수로 감질나게 흐르고 있다.
이는 금호강의 적정 하천유지수량 50만t에 비해 2%에 불과한 수량(水量).영천댐에서 불과 2.5㎞ 떨어진 임고면덕연리 덕연교 아래부터 점차 강물이 마르기 시작,실개천만 흐르다가 하류에선 아예 강바닥이 완전히 말라버리고 하천기능이 마비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댐 주변의 주민들은 『수자원공사에서 농사철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지만 금년 여름 가뭄같은 갈수기땐 아예 둑을 막고 전량 포항공단으로 보내는 바람에 지하수를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불평했다.
상.중류의 하천바닥을 굴착해도 지하수조차 나오지 않는다니 하류가 시궁창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물이 흘러야 할 곳에 생활하수와 산업폐수에 축산폐수까지 흐르고 썩은 먹물이 대구지역에 이르러 최악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여기에다 금호강의 주요지천에서 쓸려드는 폐.하수까지 오염을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금강호 주요 지천별 COD(화학적 산소요구량)부하량을 보면 전체 1만7천8백82.42㎏중 비산염색공단과 대구위생처리장을 끼고 있는 달서천의 오염부하량이 1만3천7백6.49㎏(76.65%)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신천 3천46.
46㎏(17.04%),남천 6백33.48㎏(3.54%),팔거천 4백96.04㎏(2.77%)등의 순으로 나타나 금호강 하류의 가장 큰 오염원이 달서천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대구지역 금호강 하류는 한마디로 거대한 하수구.하루 1백16만t의 생활하수와 18만~20만t의 산업폐수,1천4백㎘의 정화조 오수.분뇨등이 금호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신천 하구에서 15㎞에 이르는 금호강 하류는 새까만 침전물이하상을 뒤덮어 폐유를 연상시키는 먹물이 호수처럼 괴어 느릿느릿흐르다가 낙동강본류와 합류지점인 강정에 이를 즈음에는 강변의 모래빛깔조차 까맣게 물들어 처참한 모습을 드러 낸다.
이곳의 수질은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가 13.5PPM으로 환경기준 5등급(10PPM이하)을 훨씬 초과,농업용수는 커녕 공업용수로도 사용할수 없는 맹독성 수질.
건설부는 낙동강 수질오염의 주범이 금호강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하천유지수 확보로 자정력을 살리기 위해 임하댐의 물을 끌어다 영천댐에 저수한뒤 이를 금호강으로 방류하는 방안을 마련,92년부터 임하댐~영천댐간 길이 52㎞의 도수로 건설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총사업비 1천1백23억원을 들여 착공 5년만인 97년 완공될이 도수로가 개통될 경우 하루 40만t의 용수를 확보,이중 24만t을 금호강 하천유지수로 방류할 계획이어서 그때까지 금호강수질은 더욱 악화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
게다가 수질오염을 막기 위해 추진중인 도수로 공사현장에도 49만t의 폐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다 도수터널을 뚫을때 산성갱수가 하루 6천5백t씩 쏟아져 댐 상류 충효천으로 유입되는 바람에 하천수를 오염시키고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있 다.
이곳 주민 여상구(呂相龜.59)씨는 『도수터널 공사장에서 산성갱수가 폐석더미와 함께 쓸려 나오는 바람에 지하수까지 오염돼식수난이 우려된다』며 『수질오염을 막겠다고 추진하는 사업장에서수질오염을 가중시키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 아니 냐』고 반문했다. 온갖 오염물질로 뒤범벅된 채 떠내려오는 금호강물이 마침내 낙동강과 만나 본류를 이루는 경북고령군다산면호촌리와 달성군화원읍구라리의 삼각주는 국내 최대의 흑두루미(속칭 먹황새.천연기념물 제228호)도래지.
이곳에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멀리 시베리아 벌판에서 흑두루미 5백여마리가 날아와 장관을 이뤘으나 80년대 이후엔 고작 1백여마리를 헤아릴 정도로 줄었고 재두루미.청둥오리등 철새들은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다.
검은 폐유같은 금호강의 오.폐수가 고스란히 이곳으로 쓸려들고있기 때문이다.
***교각엔 폐수 찌꺼기 특히 대명천과 진천천이 휘감아 도는사문진교(沙門津橋)주변은 강인지,시궁창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끈적끈적한 먹물 위에 희부연 거품이 부글거리고 교각엔 폐수찌꺼기가 켜켜이 쌓여 물길을 막은채 악취만 풍기고 있다.
그나마 흐르는 강물이 교각에 쌓인 쓰레기더미로 물길이 막혀버리자 잔인한 인간들에게 『강은 흘러야 한다』는 자연법칙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강물은 느릿느릿 여울을 이루며 S자형으로 역류하고 있다.
이곳에는 교량이 세워지기 전까지 5백년 뱃길을 열어온 나루터가 있었다.사문진나루터-.
이 나루터는 조선조 후기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개화의 물결을 타고 대구지역의 상공업 발달을 이룬 근대교역의 요람지였다.특히일제땐 부산에서 소금배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왔고 일본 무역선들이 이곳에 닻을 내리고 질이 좋기로 이름난 고 령쌀을 실어나르는등 우리 상권을 강점하면서 영남내륙의 교역전진기지로 발전했다. 8.15해방후에도 낙동강 상류인 경북안동지방에서 하류로는부산의 구포포구에 이르기까지 지역특산물을 수송하는 뱃길을 이어주었고 6.25때엔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의 승전고를 울린 낙동강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기도 했 다.
그러나 92년 이곳에 달성과 고령을 잇는 사문진교가 건설돼 뱃길이 끊기고 20만평 규모의 주물협동단지까지 조성되면서 황폐한 강변으로 변했으며 불과 3백m 상류의 달성군 골재채취장에선마구잡이로 모래를 파내는 준설선과 페이로더의 굉음 만이 적막을깨고 있을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