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7.무리한 시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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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백여만평의 거대한 아파트단지를 불과 5년만에 세운 비결(?)을 터득코자 분당.일산신도시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두번 깜짝 놀란다. 첫번째는 자기나라에서는 최소한 20년은 걸릴듯한 인구40만명 수용규모의 신도시를 단 5년만에 해치웠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두번째는「이런 사람들의 조상이 어떻게 서양의 파르테논신전(神殿)과 비견될만한 종묘와 같은 뛰어난 건 축물을세웠었느냐」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란다.
「6백여년전의 우리」와「현재의 우리」사이의 이 크나큰 틈새는어디서부터 벌어지고 있는가.「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목적지상주의가 판치는 가운데「안전」이나「완벽」은 어느새 뒷전으로밀리면서 종묘를 만들 수 있었던 그 우수한 유 전인자마저 이제는 퇴화돼 버린 것은 아닐까.
서울 지하철 공사 ○○공구의 감리단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그만 둔 朴모(45)씨는 요즘도 달리는 지하철 위로 터널이 무너져 사람들이 아비규환속에서 울부짖는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터널공사가 이미 상당부분 진척된 시점에 감리단장으로 부임한 朴씨는현장점검결과 터널 일부에 크랙(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제구간을 철거,재시공토록 감독관에게 통보했다.이 보고서는 감독관의 사인을 거쳐 발주기관에 보내도록 돼 있는데 감리단장보다 더 엄격해야 할 감독관은『 시방서대로 했는데 왜 긁어부스럼을 만드느냐』며 사인 해 주지 않았다.문제는 시방서 자체가 부실시공을 하지않을 수 없게끔 잘못돼 있다는데 있었다.
터널 구조물이 완성되면 암반 굴착면과 접하는 터널 구조물의 외벽을 방수처리 해야 하는데 암반 굴착면과 터널 외벽과의 사이공간이 85㎝에 불과해 기능공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확보돼 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림참조〉 더구나 이 공간에는 굴착면의 붕괴를 막기 위한 H빔이 설치돼 있는데다 H빔을 지탱하기 위한 앵커(굴착면이 무너지지 않도록 땅속 깊숙이 쇠줄을 박아 H빔에 고정시키는 죔쇠)까지 설치돼 있어 실제 기능공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은 30~40㎝가 될까말까한 정도였다.그러니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서 방수작업이 올바로 될리 만무했고,그 틈새로 지하수가 스며들면서 균열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처럼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현장여건을 무시한 엉터리 시방서를 남발해 놓고 잘못되면 부실시공이라고 덮어씌우는 것이 발주기관의 횡포다.「안전하고,완벽하게」보다「빨리,싸게」를 우선하는 발주기관의 요구는 매사 이런 식이다.
원효대교의 경우는 더 기막히다.中央日報 한강다리 안전진단팀의취재에서도 드러났지만(27일자 19面 참조)처짐현상이 자연적으로 수반되는 디비다그공법의 특성을 감안해 이 다리는 원래 연결부위가 23㎝ 높게 설계돼 있었다.그런데 시공과 정에서『대통령이 직접 시주(試走)할 다리 중간 중간이 울툭 불툭 튀어나와 있으면 야단 맞는다』는 서울시측의 요구로 평탄하게 수정됐다.그결과 연결 부위가 아래로 처져 65억3천만원을 들여 이를 다시들어올리는 대수선공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대통령 기분 맞추려고65억원이라는 국민의 혈세를 그냥 날리게 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개통후 잦은 사고로 결국은 운행을 중단하고 전면 점검하느라 법석을 떨었던 과천선 지하철의 경우는 개통식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키로 일정이 짜여 있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개통했다가 교통대란을 일으킨 사례다.
일산신도시에서 자유로로 접어드는 램프를 지나 본 사람들은 멋모르고 속도를 냈다가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원래 고속화도로의 램프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의 원심력을 감안해 바깥쪽을 높게 설계해야 한다.자동차 주행시험장이나 벨로드롬(자전거경기장)트랙이 바깥쪽은 높게,안쪽은 낮게 설계돼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그런데 이곳은 정반 대로 자유로로진입하는 부분이 푹 꺼져 낮게 설계돼 있다.원칙대로 건설하려면교각을 더 높여야 하고 이는 곧 공사비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첨단의 극치를 달린다는 경부고속철도 건설현장은 더 한심하다.
***工期 멋대로 단축 92년7월에 착공된 천안~대전 시험구간의 시발역인 천안역사가 들어설 예정인 충남아산군배방면장재리 들녘에 가보면 건설하다 만 교각이 마치 폭격맞은 것처럼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
교각을 건설하던 도중에 당초 PC박스형으로 설계됐던 교량구조가 변경돼 공사가 1년가까이 중단되고 있는 현장이다.교각은 상판의 구조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데 PC박스형을 전제로 만들어진교각위에 전혀 다른 구조의 상판을 얹겠다는 것이 고속철도건설공단의 발상이다.시속3백㎞의 고속열차가 달리기 때문에 어떤 공사보다 정밀성이 요구되는 고속철도 교량이 교각 따로,상판 따로 건설되게 된 것이다.
부실시공의 뿌리는 설계도면이 확정되기도 전에 무작정 착공부터하고 보는 이같은 졸속주의에 기생하고 있다.일단 착공한 후에 도면의 수정을 거듭하다보니 준공된 후에 시설보수를 하다보면 설계도면 대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업계종 사자들의 얘기다. 이렇게 발주기관이 변덕을 부리게 되면 시간에 쫓긴 설계회사에서는 납기에 맞추기 위해 비슷한 도면을 찾아 베낄 수 밖에없다.한강교량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도로의 교량이 모두 닮은 꼴을 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한강다리를 설계했던 설계용역회사의 어떤 직원은 선배기술사가 초안이라고 준 도면에「낙동대교」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못했다고 한다.현재 서울시가 올림픽대로 건설이후 최대 역사로 건설중인 북부간선도로의 특정구간이 프 랑스에 있는 것을 베낀 것이라는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고 있다.
돈을 아낀다고 시간을 단축하고 그 다음에는 또 돈을 줄이고 그러다 사고가 터져 돈도 시간도 모두 다 잃고마는 이 어리석음을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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