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성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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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지난 어머니가 말한다. “이번에 이사 가면 꼭 내 방 하나 따로 줘요.” 아버지는 별 쓸데없는 소릴 다 한다고 책망을 하고, 아들도 어머니가 왜 저러시나 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기어이 방 하나를 쟁취해낸다. 한 평이 조금 넘는 작은 방, 구석진 곳이라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는 요즘 가계부도 쓰고, 책도 보고, 가끔 뭔가 끼적이기도 한다. 육십 평생 요즘처럼 행복한 적은 없다는 마음으로…….

“드디어 방이 보여! 앤디 워홀의 방, 반 고흐의 방이 있듯이 내가 들어갈 방이 보인다구!”
어느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고 흥분해서 외친 말이다. 자기만의 화풍을 이룩한 화가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자기만의 방을 찾은 자는 이렇듯 기쁘다. 여성들 역시 평생 ‘자기만의 방’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여성의 심정을 너무나 잘 대변하고 있는 책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 문학 비평의 정전(正典)이라 일컬어지며 페미니즘 문학을 논할 때는 늘 일순위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화자가 뜬금없이 ‘자기만의 방’을 화두로 꺼내면서 시작된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돈과 자기만의 방, 이는 독자적인 수입과 독립적인 공간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능력이나 희망 여부에 상관없이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를 소유한 여성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이 글의 화자가 옥스브리지의 잔디밭에서 내쫓기고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당시 여성들은 지식 및 경제 앞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성들은 ‘최고의 여성도 지적으로 가장 열등한 남성보다 못하다’, ‘여성이 작곡을 하는 행위는 개가 뒷다리 걷는 것과 다름없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여성을 하찮게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여성이 소설을 쓰고 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때는 분노를 품지 마라, 여성성과 남성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비평과 찬사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써라, 무엇보다 진실해라, 라고 여성들을 설득하고 독려한다. 여성이 지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공동거실에서 온갖 일상적인 방해를 받으며 훌륭한 작품을 쓴 제인 오스틴이 있지 않았는가? 그는 이렇게 제인 오스틴을 예로 들며, 작가는 인간과 세계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고 못 박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러한 주장은 공허한 울림이 아니다. 그 자신이 인내력과 의지력, 확고한 내면세계를 갖추었기에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그의 글은 생기 넘치고 섬세하며, 지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차갑지 않고, 우아하면서 재기발랄하다. 가부장적 사회제도로 인한 성의 불평등을 토로할 때조차 풍자와 유머를 사용하여 심각한 분위기 속에 파묻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자기만의 방》이 여성 비평 문학의 정전으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리라.

* 도서 : 자기만의 방
* 저자 : 버지니아 울프 지음 / 김정란 옮김
* 출판사/정가 : 대교베텔스만 / 8,000원

조인스닷컴(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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