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6.검은 뇌물사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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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선의으이 피해를 막기위해 관련업체.관계자및 증언자를 익명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독자여러분의 넓은 이해바랍니다(편집자 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 성할 리 없다」고 하지만 우리건설업체들은 그 정반대다.해외에 나가서는 잘 하는데 국내에선 온통 부실 투성이다.왜 이 지경이 되고 마는 걸까.
성수대교 부실공사의「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무려 1천5백여억원을 토해내기로 한 동아건설만 해도 그렇다.리비아의 광활한 사막을 장장 4천7백여리나 가로질러 하루 2백만t의 물을 끌어대게 함으로써 세계지도를 바꿔놓게 한 대수로(大水路) 역사(役事)의 장본인이다.아시아권에서는 토목.기술 어느 분야에서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단연 돋보이는 굴지의 건설업체다.그런데왜 국내에선 다리 하나 제대로 놓지못해 참담한 꼴을 당하는 걸까. 스무평 남짓한 땅뙈기에 방 2칸짜리 집 한채만 지으려해도족히 십수명으로부터 뜯기고야마는 고질적인 뇌물관행 풍토에서부터우리는 이 문제를 해부해볼 필요가 있다.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우리나라다.구청공무원.파출소.소방서.사이비 기자.동네 폭력배등 평균 24군데의 각각 업무 소관이 다른「파리떼」들이 달라붙는다는 한 주택건설업자의 통계가 나와 있 을 정도다.
오막살이 한 채를 지으려해도 이 모양인데 대형 공사가 벌어지는현장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설계단계에서부터 착공.기성금 신청.
설계변경.준공등 거치는 과정마다 검은 파수꾼이 손님(업자)오기를 기다리고 있다.한 계단을 넘어갈 때마다 통과세를 뒷돈으로 내야 한다.관급공사를 수주해 완공하기까지 맨입으로 처리되는 일은 그야말로 전혀 없다시피한 것이 건설업계의 현주소인 것이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공사 기획에서 준공단계를 거치는동안 정치자금을 제외하고도 총공사비의 10%를 상회하는 돈이 뇌물로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는 것이 S건설 H회장(61)의 증언이다.
건설공사의 뇌물 고리는 고위관리를 움직여 정부가 스스로 사업계획 발표를 하도록 만드는데서부터 시작된다.T건설은 5공(共)시절 서해안의 항만공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업부지 인근에 미리 석산(石山)을 확보한 후 청와대 고위층을■찾아 가 항만의 필요성을 강조,일을 추진토록 해 공사를 맡았다.이른바 공사(프로젝트)만들기의 수법으로 항만공사에 필수적인 돌을 채취하는 석산을 미리 확보해 놓았으니 입찰 때 가격경쟁에서 유리한데다 업체들도 T사에 석산에 대한 연고권을 인 정,높은 금액에 공사를수주할 수 있도록 협조했던 것이다.
공사 만들기 과정에는 지역사업을 선도하는 국회의원을 움직이기도 하고,급한 경우 아예 청와대 고위층을 찾아 정치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기부하는게 관례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사 만들기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기발한 아이디어 장사수법도 있지만 대개 정부의 사업계획 정보를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빼내 공사수행에 필요한 부대시설을 확보,연고권을 주장하는 경우와 특정지역에 공사실적이 있는 업체가 그 일대를 지나는 도로등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수도 있다.일단 프로젝트를 만들고나면 그 다음에는 설계회사를 찾아 자기에게 유리한 공법이나자재를 설계때 넣어달라는 뇌물성 로비를 벌여 이를 빌미로 공사를 쉽게 따도록 공작한다.
89년 U사는 서울지하철공사에 터널 신공법인 TBM공법이 적용되도록 청와대를 비롯,국회.서울시등을 드나들며 로비를 벌여 결국 수개 공구를 이 공법으로 설계토록 해 공사권을 따낸게 대표적인 공법로비 사례로 꼽힌다.
이 공법로비를 벌인 장본인 J부사장은 이미 U사를 떠났지만 당시 Q회장과 함께 정치권을 동원하면서 수억원의 정치자금을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뇌물이 오가는 과정은 발주및 입찰단계.보통 정부공사가운데 큰공사는 사업기관에서 발주관련 서류를 만들어 조달청에 입찰업무를 의뢰하는데 업체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사안은 예정가를 알아내는 일이다.이 엄청난 정보를 독점하는데 는 정치권의 결탁은 물론 조달청장과 예가를 작성하는 책임자인 조달청 시설국장,그리고 계약과장등 입찰관련 업무자는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업체의 뇌물공세가 있게 마련이다.만약 경쟁사간의 담합이 이루어질 경우 반드시 떡값을 챙겨주어야 한다.
조달청이 서울종로5가 서울기동대 자리에 있을 때인 70년대말조달청 입찰장에는 업체간 담합에 의해 공사권을 따도록 돼있는「신랑업체」의 떡값을 받기 위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을 정도였다.담합행위가 드러나면 즉각 고발을 해야 하는 데도 담당공무원은 이를 묵인했다.이 공무원도 엄청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월례비는 상식 예가(豫價)누출과 떡값 나누기는 사정(司正)의 칼날이 번뜩이는 현 문민시대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구청및 지방 시.군이나 체신청등 중소규모 공사 발주관서의 부패는 말로 할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의정부 업체인 H건설 업무담당 임원이었던 K씨는『시청의 경리계장이나 군청의 용도계장은 업체에 예가를 알려주고 총공사비의 0.5~1%를 예가 누출비(후다)로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K씨는『현재 입찰때 예가 봉투를 다섯개 만들도록 돼 있지만 담당공무원이 아예 특정업체에 다섯개 봉투의 예가를 다 알려주면이 업체는 평소 거래하는 다섯개 업체에 예가봉투를 하나씩 나눠준뒤 어떤 업체가 낙찰되더라도 도장값(건축공사 공사비의 5~7%,토목공사 8~10%)만 챙기고 예가를 알아낸 업체에 공사를맡기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있다』고 밝혔다.
지방 시.군의 입찰 부조리는 경기도 K시의 사례에서 극에 달한다.K시가 작년에 발주한 3억7천만원짜리 동사무소신축공사의 경우 설계가에서 1~5% 삭감해 예정가를 정하는 관행을 무시하고 담당 공무원은 5천만원을 도리어 더 얹어 예가 를 만들어 미리 짠 안양 업체에 정보를 흘려 공사권을 따도록 했다고 K씨는 말한다.
계약 이전까지는 본청의 행정직이나 기술직 공무원이 뇌물 창구지만 현장공무원의 부패상은 착공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다.H사의 K과장은 지난 89년 대구지점 건축공사의 착공계를 내기 위해 구청을 방문하자 담당공무원이 대뜸『잘 알면서 빈손으로 왔느냐』고 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30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착공계를 제출,허가를 받아냈다.
공사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장기 공사의 경우 월 10만~50만원 규모의 월례비가 감독관.감독보조등에게 주어지고 추석등 명절때는 수백만원이 별도로 전달된다.물론 돈을 준 대가만큼 감독관은 업자에게 편의를 봐준다.설계변경 혜택에다 규 정상 금지돼있는 일괄하도급.재재하청등을 묵인해주고 자재등을 빼먹도록 아예도와주기도 한다.
공사도중 감독관만 손을 벌리는 것이 아니다.인.허가 관련 공무원,노동부,경찰,환경처,감리자등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는 공무원은 손을 내민다.응당 지불토록 돼있는 기성금액을 타내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우선 감독관의 사인이 있어야 하 고 사인이 나오더라도 돈을 직접 지급하는 본청 회계담당 공무원이 집행서를쥐고 눌러 앉아 있으면「하세월」이다.돈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준공때도 까다롭다.월례비를 꼬박꼬박 지불해 왔지만 준공 단계가 되면 다시 돌변한다.대형건설사인 H사의 S부장은『신도시 기반시설공사 준공 과정에서 감독의 꼬투리가 심해 별도로 수백만원의 뇌물을 건네주었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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