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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대교 컴퓨터 설계.관리 외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성수대교 붕괴참사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컴퓨터에 의한 교량설계와 관리체제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소리가 높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한 순간에 수장(水葬)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성을 간직한 시설물인 대교(大橋)의 건설과 유지관리에첨단 컴퓨터기술을 활용하지 않은 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슈퍼컴퓨터까지 갖춰놓고 온갖 전산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부 당국이 정작 이렇게 민감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공공시설물의 안전관리에 첨단 컴퓨터기술을 외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大 토목환경공학과 이성우(李成雨)교수는『지금까지 국내 토목설계의 초점이 공기단축에만 맞춰져 구조해석용 전산소프트웨어를개발하는 능력이나 이를 운용하는 인력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다』고 강조했다.
李교수는『현재 국내 설계업계에는 GT스트러들,SAP-4,NASTRAN등 여러가지 구조해석용 전산소프트웨어가 수입돼 있지만우리나라에서 쓰기 쉽게 국산화되지 못해 이들 소프트웨어가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목공사의 설계.감리.유지관리등의 전산화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것이 이번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
그는『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같은 소프트웨어들이 70년대초 외국에서 개발된 것이지만 성수대교 설계에는 이나마 이용되지 않은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형 공사 시공능력등 하드웨어분야에서 크게 손색이없는 수준에 오른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빈발하는것은 소프트웨어측면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건축사무소들이 영세성을 벗지못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투자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
수입된 소프트웨어를 국내 업체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국산화하는 노력이 꼭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발주 대형공사및 시설물의 유지관리가 공기(工期)단축.비용절감에만 초점이맞춰져 이에따라 일을 해야하는 업계로서는 컴퓨 터에 의한 시공및 유지보수를 위해 돈.시간.사람을 제대로 갖출 겨를이 없다는것이다. 전문가들은 설계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사후 구조진단이라고 말한다.고려해야할 변수가 엄청나게 많아져 시간과 인력이그만큼 많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시스템을 활용,꼼꼼히 관리하고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하는 것만큼 확실한 안전관리방법도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관(官)주도인 토목공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시설물 유지관리에 이같은 부담은 무시되기 십상.구조진단등의 핵심적인 분야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첨단 컴퓨터시스템기술관련 비용이 아예 반영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이다.
美.日등 선진국의 경우 설계시 구조해석단계에서 다양한 상황을가상한 충분한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교량 설계의 완성도를 높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계산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설계나 진단단계에서 필수적인 3차원 컴퓨터그래픽분석기술도 업체들에는 용역을 따내기 위한 전시용에 불과해 정작 중요한 상세설계에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람의 영향을 실험하는 풍동(風洞)실험의 경우 우리나라는 거의 컴퓨터를 통한 모의실험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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