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하지 않고 수사 임할 것 외부서 검찰 흔들지 말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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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진 신임 검찰총장이 임기 첫날인 24일 오후 대검찰청에 출근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최정동 기자]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은 마음이 무거운 듯 얼굴이 어두웠다. 주말인 24일 오후 대검 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자택을 나서던 중이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주차장으로 향하던 그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기자와 마주치자 일순 당황한 듯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직결된 BBK사건 수사와 삼성 특검법 국회 통과 등 중대 현안이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일까. 그는 기자의 물음에 차분하게 답변했다.

-어려운 시기에 총장을 맡으셨는데.

“중책을 맡은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법과 원칙대로 수사할 각오입니다. 검찰 수사의 질과 품격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요일 취임식에서 밝히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주말에 무슨 일 때문에 출근하는지.

“어제(23일)부로 정상명 총장이 퇴임하셨고… 검찰 수뇌부가 다 바뀐 마당에 자칫 토요일과 일요일, 지휘권 공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검찰 지휘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대검찰청에 가려고 합니다.”

임 총장은 26일 오전 대검찰청 대강당에서 각급 고·지검장과 재경 검찰 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할 예정이지만, 임기는 24일 0시부터 시작됐다. 취임식과 취임 기자회견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할지에 검찰은 물론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최대의 관심인 BBK사건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시기에 대해 물었다. 그는 걸음을 멈춘 뒤 입을 뗐다.

“언제라고 날짜를 박아서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에요.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민감한 시점인데.

“외부에서 검찰을 흔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검찰을 흔들려는 시도가 있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수사에 임할 겁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언론도 검찰 수사가 잘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요.”

‘임채진 호’ 앞에는 또 하나의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검찰이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구성해 이번 주 본격 수사에 착수하려던 차에 지난주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더욱이 임 총장 자신이 로비 대상 검사에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임 총장은 특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검은 검찰 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서 보충적으로 수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도입해야 하는데….”
그는 강한 아쉬움을 나타낸 뒤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정치권에서 특검법안이 통과됐으니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특별수사·감찰본부가 짱짱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검사들이 의지를 갖고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수사에 임해야겠지요.”

-본인이 삼성 로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미 인사청문회 때, 그리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내 입장을 충분히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그런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나 자신, 덕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닌가 겸허하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에서 “임 총장 내정자가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임 총장은 대검 공보기획관을 통해 “삼성 측에서 어떤 청탁이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시절 에버랜드 사건 수사검사 중 한 사람을 전출시켰다는 의혹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한 입장을 물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수사검사를 전출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해 8월 정기인사로 수원지검으로 전출된 수사검사를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 형식으로 계속 근무하도록 했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승인까지 받아서 내가 중앙지검장 자리를 떠날 무렵까지 수사와 공판에 전념하도록 했지요.”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총장 임기(2년)가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란 세간의 관측을 전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원칙론만 언급했다. “총장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 기본 취지가 지켜질 것으로 생각해요.”

임 총장은 “외풍과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검찰을 지키는 총장이 되도록 하겠다”며 승용차에 올랐다. 그는 2시간 동안 집무실에서 주요 현안을 챙긴 뒤 권재진 신임 대검 차장과 차동민 기획조정부장 등 주요 간부들의 보고를 받았다.

고성표 기자 <43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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