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⑥ 용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일러스트=강일구

세계적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일곱 가지 덕목에 대한 이야기로 매주 토요일 중앙일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주 ‘정의’에 이어 오늘은 여섯 번째로 ‘용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용기를 뜻하는 영어단어 ‘커리지’(courage)는 심장이라는 뜻의 라틴어 ‘코르’(cor)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사전적으로 위험 앞에서 드러나는 정신의 강인함·의기·씩씩함·인내력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은 용기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또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춘다.”

◆격렬한 투쟁의 현장

북아일랜드 가톨릭 정치운동가인 베나디트 델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 나는 투쟁의 용기가 있었다. 오늘은 승리의 용기를 얻을 것이다.”

◆사자와 신부

세타의 수도원에서 온 한 무리의 수도승이 이집트의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대수도원장 니세리우스도 있었는데, 갑자기 사자를 만난 이들은 모두 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뒤에 니세리우스가 임종을 맞을 때, 한 수도승이 물었습니다.

“대원장님, 저희가 사자와 맞닥뜨렸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사자를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라네.”

“그럼 왜 저희와 함께 도망치셨습니까?”

“사자를 피해 한나절 도망치는 것이, 남은 평생 허영심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네.”

◆노벨평화상 연설 중에서

양심수로서 28년간을 감옥에 갇혔던 넬슨 만델라는 1993년 10월 12일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말합니다.

“무수한 사람이 인간을 주인과 노예로 가르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독을 외면하고,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육식 동물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생명과 자유, 번영과 인권, 올바른 통치를 누릴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양심수가 사라질 것이며, 어떠한 인권 침해도 결코 용인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악 앞에서

독일 나치의 공포 아래에서 어느 두 랍비는 유대인의 정신적 힘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비밀 경찰의 눈을 피해 여러 유대인 공동체에서 종교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두 랍비는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한 랍비는 앞으로 닥칠 일을 두려워하며 기도를 멈추지 않았으나 다른 랍비는 하루 종일 누워 잠만 잤습니다.

“어찌 잠만 자는 것이오?” 두려움에 사로잡힌 랍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두렵지도 않소?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단 말이오?”

“우리가 체포되기 전까지는 나도 두려웠소. 이제 이렇게 잡힌 몸이니 두려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소? 두려움에 떨던 시간은 지났소. 지금은 용기를 내어 운명과 맞설 시간이오.”

◆사랑과 용기

마하트마 간디는 용기에 대해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용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용기는 허세나 오만이나 광기와 다르다. 용감한 자는 정치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혹은 개인적인 일이든 간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그 결과를 의연하게 감수해낸다. 인간이 다른 이에게 순종하는 이유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 오로지 이 두 가지뿐이다. 사랑에서 오는 순종은 처벌의 두려움으로 인한 순종보다 몇 천 배 강하다.”

일러스트=강일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