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 걸림돌 없앤 무샤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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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장기 집권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그의 대선 후보 자격과 관련한 헌법소원이 모두 기각된 데다 야권도 총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대법원은 22일 무샤라프의 대선 후보 자격을 문제 삼은 헌법소원 6건 가운데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마지막 1건을 최종 기각 처리했다. 압둘 하미드 도가르 대법원장은 이날 "소송은 기각됐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한 다른 소송 5건은 이미 19일 기각됐다. 말리크 카윰 법무장관도 "이번 판결은 무샤라프의 대통령 직 수행에 대한 장애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무샤라프 대통령은 조만간 군 참모총장 직을 사퇴하고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에 취임할 예정이다. 무샤라프는 지난달 국회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유효 투표수의 97%를 얻어 승리했다. 그러나 야권은 군 참모총장 직을 겸임하고 있는 그의 대선 후보 자격을 문제 삼아 대법원에 헌법소원을 내 그동안 취임하지 못했다.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여당인 파키스탄 무슬림리그(PML-Q)와 무샤라프 지지 정당들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 승리를 위해 24일까지 총선 후보를 확정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소송을 기각한 대법원 판사 10명 모두가 무샤라프 대통령이 이달 3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뒤 임명한 친정부 인사여서 야권이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의 헌법소원 기각과 관련, 6개 이슬람 정당 연합체인 무타히다 마질리스-이-아말(MMA)은 "친정부 인사 일색인 대법원 판사들의 결정은 예상됐던 일"이라며 "앞으로 야권은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위해 모든 힘을 모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야권을 통합해 총선 불참 여부를 고려했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총선 참여를 선언했다. 현지 일간 '더 뉴스'는 23일 부토 전 총리가 전날 야당 지도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된 현 상황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투명한 선거가 이뤄지지 않겠지만,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총선 참여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부토는 그러나 "정부가 공정선거를 방해하는 행동을 할 경우 언제라도 총선을 보이콧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53개 영연방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22일 무샤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해제와 참모총장 직 사퇴'라는 요구사항을 이행하지 못했다면서 파키스탄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영연방 회원국 자격 정지는 상징적 의미에 불과하지만, 장차 경제 제재가 추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파키스탄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할 수 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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