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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 단기 성과 중시 … 그래도 성장의 에너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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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외국 자본과 한국 경제 :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승철 전경련 전무, 허영구 민노총 부위원장, 이찬근 인천대 교수, 양수길 NSI원장, 박영석 서강대 교수, 박상용 연세대 교수,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프 코리아 대표. [사진=김태성 기자]

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렇게 다가온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지났다. 외환위기 이후 자유롭게 들어온 외국자본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일보는 "외환위기 10년…한국 경제 '큰손' 외국자본" 3회 시리즈를 연재한 데 이어 21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와 함께 21일 '외국 자본과 한국 경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서울 명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국내외 전문가 27명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았다.

주제발표=박영석 서강대 교수

박영석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외국 자본과 한국 경제'라는 주제 발표에서 "사모투자펀드의 활성화와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을 통해 국내 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인수를 원활하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럴 경우 증시에 유입되는 국내 자본이 증가해 외자에 의한 시장의 불안정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 보호장치가 대부분 사라져 현재 한국의 경영권 보호 장치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서도 미흡한 실정"이라며 "최근 증권거래법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국내 금융회사를 인수하는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국내 재벌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지나친 경영권 보호 장치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대거 유입된 외국 자본에 대해 박 교수는 동전의 양면 같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긍정적 측면은 국내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자가 금융회사를 포함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신속한 구조조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또 시장의 기업감시 기능이 높아져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경영풍토가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주식시장의 침체를 방지하는 역할도 맡았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제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개선하고 시장원리를 정착시킴으로써 대외 신인도를 높인 점도 긍정적 측면이라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부정적 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게 박 교수의 평가다. 무엇보다도 외자가 투자자금의 조기 회수를 위해 무리한 인력 감축, 핵심 자산 매각, 고액 배당 및 유상감자 등을 추진하는 바람에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투기성 외자에 의한 경영간섭 및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커져 경영 안정성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일부 투기성 외자에 의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제도와 조세제도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래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기업공시제도를 보다 철저하게 운영함으로써 기업 투명성을 확대하고 시장 규율을 확립해 외국 자본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 토론

참석자들은 외국 자본의 긍정적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외국계 기업인들은 중국.인도 등 신흥공업국에 대거 투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확산되는 반(反) 외자 정서는 한국 경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반면 노동계는 외국 자본 유입으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주장했고, 재계에선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규칙을 따라야 한다"=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쏟아낸 주문이다. 맹일영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대표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룰은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현재 세계 각국이 외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다루고 있는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극단적으로 말해 외자가 한국에서 모두 빠져나간다면 과연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맹 대표는 한국 사회의 단점의 하나로 배타성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론스타의 경우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벌였다면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가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만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처럼 외자도 장단점을 동시에 가진다고 비유하면서 "한국 경제는 외자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맹 대표는 또 한국 경제가 현재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중국.인도 등 신흥공업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진단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현 시점에 적합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에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트 코리아 대표도 가세했다. 솔로몬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게임을 하는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글로벌 규칙을 따라야 한다"며 "또 투자자의 전략이 각기 다른 만큼 모두가 제조업 위주로만 장기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더 많은 기업의 인수합병(M&A)을 하게 된다면 외자에 대한 인식이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솔로몬 대표는 "외자는 앞으로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한국 기업과의 제휴가 더욱 늘어날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한다면 한국 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은 "외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런 부정적 인식에 따른 한국에 대한 투자 위축을 우려했다.

◆"비정규직 양상과 양극화의 원인"=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외자 도입은 불가피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 대표는 "외환위기 이후 외자가 대거 들어오면서 기업 구조조정과 선진 경영기법으로 노동 유연화 현상이 나타났고 그에 따라 노동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임금 격차로 이어져 소득 양극화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임금 노동자 1600만 명 중 56%가 비정규직이라고 봤다. 허 대표는 또 "한국 노동계가 국수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인정할 수 없다"며 "현재 노동계에 대한 압박과 통제에 비하면 투기적 외자에 대한 감시는 너무 소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본의 속성상 투자와 투기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처음엔 투자 목적으로 들어왔지만 단기 차익을 노리고 기업을 청산해 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찬근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도 외환위기 이후 들어온 외자가 우리나라의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외자와 함께 유입된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가치관이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켰다"며 "이런 상황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조로(早老)화시키면서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 역차별 개선 필요"=기업의 입장을 대변한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역차별론을 제기했다. 정부가 외자에 비해 국내 기업을 지나치게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 전무는 그 예로 사모펀드(PEF)를 들었다. 그는 "외국인에게는 사모펀드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는데 국내 대기업엔 아무런 방패도 주지 않고 있다"며 "공격자에게 규제를 풀었다면 방어하는 측에도 같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촉구했다. 이 전무는 "기업이나 펀드의 입장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재계에 반외자 정서가 강하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재계는 문제가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할 것을 요구할 뿐"이라며, 소버린.칼 아이칸 등이 수천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었던 것은 국내 제도의 허점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경제 시스템을 개선해야"=외자를 들여와 경제의 선 순환에 적극 활용하지 못한 것은 우리 경제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승철 전무는 외자가 대주주로 있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산업자금 대출보다 가계대출에 치중하는 것과 관련, 자본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라고 봤다. 우리나라가 산업자본 조달 창구를 다양화하지 않고 기존 은행에만 매달린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외자는 양지와 음지 모두를 제공한다"며 "순기능적 측면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 경제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자의 순기능과 관련, 그는 기업의 자본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기 때문에 경쟁이 촉진되고 이에 따라 경제 권력은 물론 정치 권력도 분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때문에 국내 재벌기업들은 현재 외자 도입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수길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외자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로 인해 국내외 경제 시스템 간의 마찰이 야기되기도 했다"며 반외자 정서의 원인을 설명했다.

◆사모펀드(PEF)=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는 펀드. 이 펀드는 자산가치가 저평가된 업체를 사들여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주식을 되팔아 이익을 남긴다.



<참석자>

◆사회=양수길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맹일영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대표)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승철 (전경련 전무)

◆이찬근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겸 민주노총 부위원장)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프 코리아 대표)

최익재 기자, 김희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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