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로 분양가 낮춘다더니 … 공공아파트 전매 제한 기간만 늘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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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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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매 제한 기간을 늘리면서 낮추기로 했던 택지개발지구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 분양가 인하 폭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정부는 9월부터 채권입찰제 기준을 바꿔 택지지구 중대형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90%에서 80%로 하향 조정했다. 주택 수요자들의 분양가 부담을 덜게 하는 내용 등을 담은 1·11 부동산대책에 따른 것이다. 대신 분양가 인하에 따른 청약 과열을 막기 위해 전매 제한 기간을 계약 후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했다. 중대형 분양가는 택지비·건축비를 합친 가격(분양가 상한제 공급가격)과 주택채권 매입액을 더한 금액이다.

그런데 9월 이후 분양되는 공공택지 중대형의 분양가가 잇따라 주변 시세의 80%보다 높게 결정되고 있다. 지난달 분양된 경기도 용인 흥덕지구 호반베르디움 중대형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85%선인 3.3㎡당 1060만원이었다. 특히 이달 28일 1순위 청약을 받는 파주 신도시 중대형(3029가구)의 분양가는 3.3㎡당 1100만원선으로, 파주시가 한국감정원에 의뢰해 조사한 주변 시세와 비슷하다.

이는 이들 단지의 상한제 공급가격이 주변 시세의 80%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분양가는 채권입찰제를 적용받지 않고 공급가격대로 정해진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개발이 덜 된 지역에선 기존 아파트 시세는 높지 않지만 택지비 상승으로 상한제 공급가격은 비싼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80%에서 정해질 택지지구 내 중대형 아파트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주택공사가 9월 분양하려다 미룬 남양주 가운지구 중대형의 당시 상한제 공급가격(3.3㎡당 1080만원)은 주변 시세의 95%선이었다. 이달 말 부천시 여월지구에 분양될 주택공사의 중대형 상한제 공급가격도 주변 시세의 90%를 넘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부가 장담한 만큼 분양가가 내려가지 않는 데도 전매 제한 기간만 늘어 주택 수요자들과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중대형의 전매 제한 기간은 채권입찰제 대상 여부와 상관없이 7년이다. 파주시에 사는 김영호(43)씨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데도 분양가 인하를 전제로 한 7년 전매 제한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따졌다.

업체들은 분양가는 별로 내리지 않고 전매 제한만 강화되면 수요자들이 꺼려 미분양이 늘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송현담 정책본부장은 “채권입찰제도와 전매 제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박선호 주택정책팀장은 “제도 실시 초기 단계여서 아직 전매 제한 완화 등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채권입찰제=주변 시세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 공급가격 간 차액 일부를 국고로 환수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첨자는 계약 때 상한제 공급가격에 해당하는 금액 외에 채권도 구입해야 한다. 지난해 주변 시세와 상한제 가격 차이가 큰 판교 분양 때 처음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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