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北核,부담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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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초 우리나라의 외교.안보문제 전문가.학자들이 북한핵(北韓核)문제에 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정통한 정보전문가로부터 북한이 아직 핵무기를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머지않아 이미 확보된플루토늄만으로도 몇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을 듣고서였다.이미 그때는 미국(美國)에서도 중앙정보국(CIA)과국방부는 북한이 한 두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보고,국무부는아직 갖고 있지는 않다며 엇갈린 견해를 보일 때였다.
이날 자유토론의 가닥은 대체로 세가지로 잡혔다.첫째,미국이 과거핵의 투명성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핵동결로 기우는 것 같다.
둘째,핵연료봉 샘플 채취나 특별사찰 없이는 과거핵 투명성확보가어려운데 북한이 결코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 을 것이다.여기까지는 별로 이견(異見)이 없었다.그러나 셋째,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로 견해가 엇갈렸다.
과거핵이 약간 모호한채로라도 북한핵을 동결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끝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다수 현실론과 두고두고 화근(禍根)이 될 과거핵의 투명성을 제재를 해서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소수 원칙론이었다.그때도 이미 전문가들간에는 북한 핵개발의 과거를 버선속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알아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체념같은 분위기가 있었다.우리쪽에 북한을 강요할 만한 레버리지가 없기 때문이다.
7,8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우리는 원칙론에 매달리다가결국은 현실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된 셈이다.그것도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 말이다.
18일 타결을 본 北-美 제네바 합의는 우리의 목표는 고사하고 韓美간의 합의와도 너무 동떨어져 있다.韓美 공조(共助)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경수로(輕水爐)지원의 전제로 내걸었던 특별사찰이 3~5년뒤 경수로 원전공사의 중간단계로 미뤄졌고,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직결되는 폐연료봉의 북한내 건식(乾式)보관,우선 방사화학실험실의 폐쇄 아닌 봉인등 모두 엉거주춤한 해결이다. 물론 북한이 특별사찰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더이상의 핵개발및 플루토늄 생산을 동결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북한이 언제라도 딴 소리를 할 수 있는 여건과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이문제다.명백한 합의까지도 떡먹듯 무시.번복해 온 지금까 지의 북한의 행태를 생각하면 불안한 합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우리는 경수로 지원자금의 반이상을 책임지는 부담마저 안게 됐다.북한 핵개발은 막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핵투명성을 기필코 확보해야 한다는 지금까지 내건 목표에 비해 너무 미흡한결과다.그동안 국민들에게 원칙론의 환상과 기대를 거듭 심어주고도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한 정부당국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 중에도 내심 현실론에 기울어 있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그러나 협상 전략상,또는 국민여론과 분위기에 밀려 현실론을표출시키기 어려웠다고도 한다.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략상 강한 얘기가 표출됐더라도 실제 정부의 정세판단과 전망이 올바른 것이었느냐인데 아직 그점이 잘 믿기지 않는다. ***現팀 설득력이 문제 이제 우리는 싫건 좋건 北-美합의를 현실로 받아들이는데서 오는 부담을 지게 됐다.경수로 지원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상당기간 북핵(北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핵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 핵공갈을 우 려하지 않을 수 없고,자연히 우리의 안보부담은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 북핵 해결방식은 이렇게 우리에게 시련이요,도전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그러나 북한이 핵동결과 남북대화를 국제적으로 약속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핵문제의 이슈화에서 오는 당장의 부담에서 벗어나 남북문제를 새 로운 차원에서 조망하고 전개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하기에 달렸는데 문제는 과연 정부의 현 외교안보팀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다.
〈論說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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