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교수의비즈니스협상학] 믿고 거래하는 사이 아니면 흥정은 먼저 시작하는 게 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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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K이사는 얼마 전 두바이 출장을 갔다가 기념품 행상과 묘한 협상을 했다. 100달러(약 9만원) 정가 표를 붙인 상품을 50달러에 팔라고 했더니 상대가 순순히 ‘예스’한 것이다. 중동에선 가격을 무자비하게 깎아야 한다기에 반으로 후려친 뒤 그 값엔 도저히 못 팔겠다 하면 60달러 정도에 사리라고 생각한 게 빗나갔다. K이사는 가격 협상론에서 말하는 소위 ‘승자의 당혹’에 빠졌다. 정가의 3분의 1인 30달러 이상이면 팔려는 상인의 저항가격을 잘못 짚어 가격 제안을 너무 높게 한 탓이다. 상대의 저항가격을 알았다면 20달러 정도를 제시해 30달러 남짓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대의 저항가격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미 와튼 스쿨의 셸 교수는 저항가격을 알아내는 묘책으로 상대의 ‘인하 폭’을 자세히 살피라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처음에 100만원을 부른 물건을 80만원, 70만원, 65만원으로 20만원, 10만원, 5만원씩 인하 폭을 줄여 제시한다면 저항가격을 60만원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협상 때 가장 큰 고민은 ‘누가 먼저 가격 제안을 하는 게 유리한가’다. K이사처럼 당황스러운 일을 안 당하려면 상대가 먼저 제안하도록 한 뒤 맞받아치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먼저 가격 제안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가 제시한 가격에서 출발해 협상하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측면에서다. 예를 들어 60만원짜리 물건 값을 100만원으로 제시하면 상대는 100만원에서 20만원 깎은 80만원에 달라고 협상하려 든다. 단 이런 협상 전략은 상대가 상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만 가능하다.

다음 고민거리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하이 볼(high ball)’과 양심적으로 가격을 부르는 ‘로 볼(low ball)’ 중 어느 쪽이 유리한가다. 원칙적으로 하이 볼 전략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하이 볼을 고집해선 안 된다. ^오랫동안 믿고 거래하는 관계 ^결정적 약점을 상대가 알고 있을 경우 ^상대가 가격 흥정 자체를 싫어할 경우엔 당연히 로 볼 쪽을 선택해야 한다.

안세영 서강대 교수 syha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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