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의 맛있는 나들이] 서울 증산동 '다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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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은 우리랑 상당히 친근하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배꼽시계가 울리면 혼자서도 들어가 가볍게 해결하기 맞춤이다. 가까운 손님들이 갑자기 몰려왔을 때도 전화 한 통화만 하면 그럴 듯하게 대접을 끝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모든 중국집을 '예약 불요.배달 당연'으로 만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서울 증산동 연서중 근처에 있는 '다리원(02-376-0604)'도 겉보기에는 빨간 간판에 한자 상호를 쓴 평범한 중국집이다.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장면 하나요"라고 주문하면 5분 안에 단무지와 자장면이 식탁에 놓일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다리원에선 '중국집=예약 불요'가 통하지 않는다. 들어서자마자 "예약 하셨나요"라는 질문부터 던진다. "아니요"라고 답하면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들이닥치는 손님을 마냥 받을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탁이라곤 고작 7개. 서빙하는 사람도 둘 뿐이다. 자리를 '찜'하지 않으면 주방에서 음식 만들어내기도 벅찬 모양이다. 배달도 하지 않는다. 매상을 따지면 배달하는 게 도움이 될 줄 알지만 요리의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No) 배달'을 고집한다고 한다.

이 집의 주특기는 해물 누룽지탕이다. 예약 전화를 하면 음식 주문까지 받는데 "누룽지탕은 준비해야죠"라며 반강제한다. 그렇다고 예약 시간에 도착하면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도 아니다. 자리에 앉아 20분은 기다려야 누룽지탕이 식탁에 오른다.

"손님이 시간을 못 맞추는 경우가 많아 재료를 손질해두었다가 손님이 오시면 바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음식을 들고 나온 주방장 겸 사장의 설명이다.

해물 누룽지탕이 무척 특이하다. 뜨거운 철판에 갓 튀겨낸 누룽지를 담아내온다. 해물소스를 끼얹자 누룽지 사이로 소스가 파고 들면서 "치이익" 소리를 낸다. 다른 곳에서 듣던 소리보다 요란한 것이 깜짝 놀랄 정도다. 철판의 뜨거운 열이 가세한 때문이다.

해물 소스에는 낙지.주꾸미.오징어해삼.피조개.새우 등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해산물이 등장한다. 표고버섯.느타리버섯.죽순 등 버섯과 채소도 넉넉하게 들어있다. 해산물이 상당히 부드럽다. 해물 소스를 완전히 익히지 않고 뜨거운 철판에서 알맞게 익히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소스의 국물도 걸쭉하지 않다. 철판의 열로 소스 안의 전분이 응고하지 않아서다. 마지막 한술까지 부드러움이 살아 있다.

다음은 자장면이다. 자장 소스 안에 숨은 국수가 초록색이다. 손님들의 건강을 배려해 시금치.케일.셀러리 즙으로 반죽한 면이라고 한다. 싱싱한 녹색 채소의 맛이 자장 소스와 어우러져 향긋하게 느껴진다.

주변의 중국집에선 자장면을 1천5백원도 받는데 이 집은 4천원이다. 해물 누룽지탕도 3만2천원으로 '중식 레스토랑'수준이다.

그래도 하루 영업을 시작하면 끝나는 시간까지 손님이 거의 끊이지 않는다. 찾기도 쉽지 않고 주차공간도 없는데 멀리서도 단골 손님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단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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