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행정선진국은이렇다>2.미결수 처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밀입국 혐의로 체포된 멕시코인 모레 곤살레스(28)씨는 미국샌디에이고 연방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구치소측으로부터 안내책자 한권을 받았다.
책자에는 구치소내의 생활규칙 소개와 함께 변호사 선임,무료 법률상담등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그는 지방변호사회 무료 법률상담실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는지를 상담한 뒤 낯선 나라에서의 불안감을 어느정도 덜 수 있었다.
또 이 구치소에는 형법.형사소송판례등 1천권가량의 법률관계 서적을 갖춘 도서관이 있어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보호를 위한 법규등을 검토할 수 있다.
만일 찾고 싶은 책이 없는 경우엔 구치소측에 도서구입을 신청하면 재소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빠른 시일내에 구해준다. 이 구치소는 또 교사.의사등 다양한 직업인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성경공부.건강상담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재소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교화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곳의 수석행정비서관 개빈 오코너씨는『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에게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변론할 수 있는 항변권을 충분히보장해주되 구치소단계부터 말썽을 일으키는 재소자는 특별 관리,교도소로 이송될 때 수감기록을 넘겨 참고자료로 활용하게 하고 있다』며 인권보장은 물론 과학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제도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 일본(日本)은 수사기관의 편의만을 강조해 오다 미결수 수용문제를 놓고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취재진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변호사연합회(日辯聯)의 주요현안중 하나가 이른바「대용감옥」(代用監獄)폐지 문제였다.
대용감옥이란 별도의 구치소가 없는 지역에서 경찰서 유치장을 구치소 대신 활용하는 것으로 많은 인권침해 시비에도 불구하고 취조등 수사가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90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승소판결을 받아낸 T모(39.여)씨의 알몸 검색 사건은 대용감옥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꼽힌다.
나가노(長野)시에서 남편및 세 아들과 함께 사는 그녀는 무면허운전 혐의로 연행돼 대용감옥에 수감된 뒤 두평도 안되는「검신실」로 끌려가 생리중인데도 불구하고 알몸 상태로 몸수색과 오줌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자리에는 여자경찰관은 물론 남자경찰관까지 입회,몸수색 절차에 대해 일일이 지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심한 수치감을 느낀그녀는 경찰에서 풀려난 뒤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했다.
이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일본 당국은 시설이 낙후한 대용감옥을 보수하는등 여러 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연합회는『앞으로 9년간 3백억엔(2천4백여억원)정도만 투자하면 대용감옥을 모두 없애고 구치소로 대체할 수 있다』며 지방변호사회별로 대용감옥 완전폐지를 위한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재소자에 대해 인색한 대우를 하는 것은 규율을중시하고 이를 어긴 사람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응보주의」가치관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취재중 만난 고지마 산타(31.東京都立大 조선사전공)씨는 일본의 행형제도가 경제수준이나 민주화 정도에 비춰 지나치게 뒤처져 있는 현상을 전통 스포츠인 스모경기의 규율에 비유해 설명했다. 『스모경기에서 가장 치욕스럽게 지는 것은 상대편의 힘에 밀려 1m 높이의 경기장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이 때 선수가부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중은 아무도 진 사람에 대해 동정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범죄자는 사회를 유지하는 규범(경기장)밖으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으므로 열악한 처우는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러한일본의 행형정책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을 비롯해 국제인권연맹.LA변호사 회 등으로부터 대용감옥의 폐지를 권고받는등 국제적인 비난까지 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년간 재소자의 재범률이 계속 높아지는등 일본식행형제도가 한계에 부닥쳤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해방후 일본식 행형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鄭 鐵根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