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의 건강 상담실] 대장 무시하다간 큰 코 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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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충남 당진 生·서울대병원 외과 전문의·대한대장항문학회 학술·법제이사·미국 시더스 사이나이메디컬 센터 연수·미국대장항문학회 정회원·성균관대의대 외래교수·서울대의대 일반외과 임상자문의

포브스코리아건강검진 때 위 내시경 검사를 하는 김에 대장 내시경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대장 내시경을 받은 환자 36%에게서 용종이 발견된다. 용종 단계를 거치는 대장암은 약 95%. 대장 내시경 검사는 현대인 건강검진의 필수요소다.


대장(큰창자)을 쓰레기 하수 종말 처리장이라고 무시하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쾌식·쾌면과 함께 쾌변이 이뤄지지 않으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보다 더 심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식생활의 서구화와 함께 대장암이 급증하고 있다.

조선시대 어의는 왕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매화틀을 늘 관찰했다고 한다. 사실 변기는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건강검진 도구다. 화장실을 밝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늘어나고 있는 대장암의 원인과 대처 방법을 대항병원 이두한(50) 원장에게 물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암 발생률 높아

우리 인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주목 받지 못한다. 대장 역시 그렇게 관심을 끄는 장기가 아니다. 기능이라고 해야 음식물 찌꺼기에서 수분을 흡수, 고형화한 뒤 밖으로 내보내는 정도다. 하지만 배수구가 막혀 고생해본 사람이라면 대장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대장은 그렇게 까다로운 장기가 아니다. 우직하고 튼튼해 ‘음식의 탈수작용’을 게을리 한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대장이 주목 받는 시절이 있었을까. 바로 대장암 때문이다.

대장 내시경을 받은 환자 4만여 명을 분석해본 결과 36%에서 용종(폴립)이 발견됐고, 1,000명이 넘는 2.8%는 대장암이었다. 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는 직장으로 60.9%. 다음이 S상결장으로 25.1%, 횡행 및 상행결장 5.3%, 하행결장 3.4% 순이었다. 직장은 항문과 연결된 15cm 정도 길이의 대장 말단 부위.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암 발생률이 높은 것은 음식 찌꺼기의 체류 시간이 길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너무 잘 먹어서 생기는 병

대장암은 유전성이 높은 질환이다. 하지만 유전과 관련해 대장암에 걸리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소박한 식탁’ 대신 ‘기름진 식탁’을 좋아한 결과다. 특히 섬유질이 적은 고칼로리고지방식이 문제다.

육류는 담즙 분비를 증가시켜 대장을 자극한다. 게다가 변의 부피가 작아 대장에 오래 머물게 된다. 발암물질이 대장 점막과 오래 접촉할수록 암 발생의 위험성은 높아진다. 트랜스 지방이 많은 식품도 마찬가지다.

대장은 ‘농부의 밥상’을 원한다. 섬유질이 많은 음식,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즐기라는 것이다. 식이섬유는 음식물 찌꺼기의 부피를 늘려 장을 자극하고, 노폐물이나 유해물질을 흡착해 외부로 함께 빠져나간다.

일을 본 뒤엔 뒤를 항상 돌아보자

변을 본 뒤엔 반드시 뒤를 돌아보는 습관을 갖자. 대장암의 대표적인 증상은 단순한 소화불량·빈혈·복통·체중 소 등이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암이 상당히 진행됐을 때 나타난다. 이보다 혈변이나 점액이 섞인 변을 보거나, 변을 봐도 묵직한 느낌이 남아있다면 서둘러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암이 점막 아래쪽 근육층을 뚫고 들어가면서 혈관을 건드린 결과다.

하지만 피가 섞여 나온다고 모두 대장암은 아니다. 예컨대 선홍색 피가 변기를 붉게 물들이면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일 가능성이 크다. 혈액은 시간이 지나면 굳으면서 검은색으로 변하므로 항문에서 가까운 직장 쪽이면 붉은색을, 먼 쪽이면 검은색을 띤다.

직장암은 사정이 다르다. 항문과 가까워 초기에도 대변에 피가 묻어나올 수 있다. 피가 선홍색이라 치질과 혼동할 수 있다.

대장암은 조직의 괴사를 동반하기 때문에 피가 검붉거나 찐득찐득하면서 악취가 난다. 이밖에도 배에 멍울이 만져진다거나 빈혈이 생기면 대장암 3기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최근엔 변기에 약간의 혈액만 있어도 이를 감지하는 검사지도 시중에 나와 있다.

50세 넘으면 반드시 대장 내시경 받자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50세부터는 대장 내시경을 받아야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중에 대장암 환자가 있거나 이전 실시한 검사에서 용종이 있는 경우, 궤양성 대장염 환자는 더 일찍 정기 검사를 시작한다.

가족성 용종증이 있는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대장암 발병률이 11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때 이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이다.

수면 내시경으로 검사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CT 대장 검사도 등장했다. 내시경을 집어 넣지 않고 짧은 시간 내에 사진을 찍어 영상을 본다. 하지만 용종이 함몰됐거나 0.5cm 이하의 작은 크기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검사만 잘 받아도 예방 가능”

“대장암은 게으른 암입니다. 암이 되기 위해 용종일 때부터 10~15년 걸려 싹을 키워갑니다. 하지만 대부분 증상이 없으니 병원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 화근을 만들게 됩니다.”

대장암이 되기 위해선 용종 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95%나 된다. 따라서 몇 년에 한 번씩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

대항병원은 국내에서 대장 내시경을 가장 많이 한 병원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3월 국내 최초로 10만 건을 기록했고, 현재 13만 건에 달하는 검사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대장 내시경은 단순히 진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검사를 하다가 용종을 발견하면 올가미를 집어넣어 전기로 지지거나 집게를 사용해 제거할 수 있습니다. 대장 점막은 신경이 전혀 없기 때문에 특별한 마취나 처치 없이 치료할 수 있지요.”

대장 점막은 또 매우 얇아서 용종을 제거하려다 대장에 손상을 줄 우려가 높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이지 않기 위해 이두한 대항병원 원장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안전하면서도 간단하게 용종을 제거하기 위해 선진 기법인 점막하 박리(ESD)를 도입했습니다. ESD는 점막 아래에 약물을 주입해 용종을 적절하게 끌어올린 뒤 점막을 절개하면서 용종을 제거하는 기법입니다.”

그는 대장암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기술과 장비가 끊임없이 개발돼 언젠가는 대장암의 증가세를 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식생활 개선과 함께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장은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불수의근입니다. 하지만 대장도 외부에서 자극을 주면 훨씬 효과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장의 움직임은 느려지고 소화력도 떨어져 노인성 변비가 시작된다.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먹거나, 장을 자극하는 운동 또는 장을 손으로 두드리거나 주무르는 마사지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원장은 달리기 마니아다. 종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도 한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심장뿐 아니라 장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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