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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난자서 줄기세포 배양] 복제羊 돌리 뛰어 넘는 '생물학적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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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두달 내 복제양 돌리 탄생에 버금갈 정도로 생물학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을 목격할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광우병 예방 소 복제에 성공한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가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털어놓은 고백이다. 그의 말대로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생물학의 큰 틀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충격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수술과 약물에 의존해 왔던 현대의학이 줄기세포로 축을 옮기는 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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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란 뼈나 혈액 등 구체적인 장기를 형성하기 이전의 원시단계 세포를 말한다. 1백조개나 되는 인간의 세포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 짝을 이룬 '수정란'이란 한개의 세포와 만난다. 수정란이 '2→4→8개'식으로 분열하면서 태아가 된다. 뼈나 뇌.혈액 등의 세포는 수정 14일 이후에야 비로소 만들어진다. 14일 이전의 세포는 아직 미성숙 단계다.

줄기세포란 이 단계에서 추출한 세포다. 계속 분열은 하되 구체적인 장기의 세포로 분화되지 않도록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줄기세포가 중요한 이유는 시험관에서 원하는 세포를 무한정 만들 수 있어 난치병 치료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뇨의 경우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 세포를, 파킨슨병의 경우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세포를 이식할 수 있다. 이번 기술은 수년 내에 이들 난치병의 치료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줄기세포 어떻게 얻나=지금까지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 불임 부부가 시험관아기 시술의 실패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 놓은 잉여 수정란을 이용한 것이다. 대개 5년 동안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폐기 처분하며 이를 다시 녹인 뒤 시험관에서 배양해 줄기세포를 얻는다.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 등 국내 연구진도 줄기세포를 이용해 심장 세포까지 분화시키는 기술에 성공했다. 이 기술의 장점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버려질 수정란이므로 윤리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포가 필요한 환자와 냉동 수정란 간 유전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이식할 경우 불가피하게 이식거부 반응이 생기게 된다. 다른 사람끼리의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은 수만분의 1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방식을 실용화하기 위해선 수만개 이상의 냉동 수정란을 따로 보관했다가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에게 이식하는 대규모 냉동수정란 은행이 필요하다.

둘째 방법은 동물과 사람의 핵이식을 통한 줄기세포다. 소 등 동물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여기에 환자의 핵을 이식시켜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이다.

이미 국내외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한 사례가 다수 있다. 이 방식은 환자의 핵이 줄기세포에 담기므로 거부반응이 없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동물의 난자를 이용하므로 다른 종(種)간 교잡이란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 게다가 핵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동물의 난자 속에 미토콘드리아를 비롯한 세포 내 소기관에 동물의 유전자가 일부 남아 있으므로 줄기세포의 유전자가 1백% 환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우려하는 반수반인(半獸半人)의 탄생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이번 연구의 특징은=문신용.황우석 교수팀의 사람 사이의 핵이식을 통한 줄기세포 성공은 양자의 단점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사람 난자를 이용하므로 윤리적 문제를 피할 수 있고 환자 자신의 유전자만 이식되므로 거부반응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의 개발은 선진국 간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기도 했다. 실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은 법률을 고쳐 가면서까지 사람 사이의 핵이식을 통한 줄기세포 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장려해 왔다.

사람 사이의 핵이식을 통한 줄기세포가 지금까지 난공불락의 과제로 남아 있던 이유는 기술 자체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여성에게서 수정되지 않은 건강한 난자를 기증받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수천개의 난자를 얻을 수 있는 동물과 달리 한달에 한개씩 만들어지는 난자를 시험관 아기 등 아기를 갖기 위한 목적도 아닌데 실험 목적으로 기증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줄기세포 연구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개가를 거두는 특성이 있다.

◇윤리문제는 없나=이번 기술은 동물의 난자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열었다. '반수반인(半獸半人)' 등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련한 '생명윤리에 관한 법률안'에서도 이번 기술은 무난히 허용될 전망이다.

물론 인간복제로 악용될 우려 때문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 줄기세포 전문가인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는 "사람 사이의 복제 배아를 난치병 치료용으로 쓰지 않고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킬 경우 태아로 태어날 수 있다"며 "인간복제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은 과제는=이번 기술이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려면 몇 가지 과제를 풀어야 한다. 우선 거부반응이 없는 줄기세포를 얻는 데엔 성공했지만 여기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특정세포만 선택적으로 골라내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당뇨환자에겐 췌도 세포, 백혈병 환자에겐 조혈모세포 등 특정 종류의 세포만 골라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세포치료는 당장 가능하지만 장기이식은 아직 요원하다는 점이다. 장기는 서너 종류 이상의 세포가 특정한 모양을 갖고 이뤄지므로 줄기세포에서 특정 장기까지 만들려면 단백질 주형기술 등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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