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와인학자 “한국 발암물질 검사 못 믿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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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내 와인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발암 물질 논란은 한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 지난달 11일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보건복지위)은 대부분의 국내 수입 와인들에서 발암물질인 에틸카바메이트가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검출된 양이 미 식품의약국(FDA) 권고 기준치의 평균 7배, 최고 26배라는 충격적 사실도 덧붙였다. 놀랍게도 이 주장의 근거는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의 연구 용역자료였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KBS가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와인 발암물질 논쟁의 서막이 올랐다.

모든 언론이 일제히 포문을 열면서 와인업계는 수세에 몰렸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국내 와인 시장과 와인 문화가 급격히 위축될 기미마저 보였다. 근거가 희박한 음모론도 떠돌았다.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있는 와인 수입을 견제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라는 것이다.

며칠만에 식약청이 KBS의 보도에 대해 반박하고 나서면서 음모론은 이내 잦아들었다. 식약청은 ‘발암물질 검출량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구체적인 근거 수치도 발표했다. 실제 조사 결과, 성인 남자가 수입 와인을 하루 약 12.9~65.8g씩 매일 53년 동안 마셔도 암이 발생할 확률은 100만 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인의 와인 하루 섭취량은 1.3g 이하에 불과하다. 전세는 다시 팽팽해졌다.

식약청의 반박은 국지전을 유발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고 의원의 폭로 근거가 맞다는 전제 하에 식약청의 계산이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아무리 와인이지만 53년간 매일 술을 마신다는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그러나 보르도와인협회(CIVB)와 몇몇 와인 수입업체들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고 의원의 폭로 직후에 비해 와인 발암물질을 둘러싼 불안감과 우려는 현저히 줄었다. 와인업계의 반격 과정에서 밝혀진 몇 가지 사실이 와인 애호가들은 물론 대중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에틸카바메이트는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거나 섭취하는 과실주나 간장 등에도 들어있다. 둘째, 전세계적으로 이 물질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캐나다뿐이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는 권고 기준치를 제시하는 등 자율 규제를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와인 업계가 가장 역점을 두고 알렸던 것은 와인의 항암 기능이었다. 에틸카바메이트의 암 유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함유된 페놀화합물 덕분에 전체적으로 볼 때는 와인이 암 발생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식약청은 이미 2004년부터 에틸카바메이트의 유해성을 평가해오고 있고, 올해 들어 구체적인 저감 대책을 추진해왔다. 실제로 식약청이 제시한 2004년 이후 와인의 에틸카바메이트 검출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갔다. 800여종의 대표 와인을 매년 조사하는 프랑스의 평균 에틸카바메이트 검출량은 5.8 ㎍/ℓ. 고 의원이 제시한 국내 검출량의 19분의 1 내지 62분의 1에 불과하다. 왜 같은 와인에서 다른 양의 에틸카바메이트가 검출됐을까? 이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지난달 22일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고 의원은, 식약청이 이를 속 시원히 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에틸카바메이트가 프랑스에서는) 평균 검출량이 5.8㎍정도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국내에 들어오면서 최대치가 364㎍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명현 식약청장은 동문서답 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저감화 대책이 필요하다면 대대적으로 국제적인 연구기관과 협조하면서 기준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

이 의문에 대해 국내 와인업계와 전문가들은 유통 과정상의 문제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한다. 수입 와인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배로 수입된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통상 적으로 30일. 배에 특별한 저장 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 와인은 고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에틸카바메이트가 증가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실제로 상당수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화 했고, 일부 수입업체들은 자신들이 적절한 저장 장치를 갖춘 상태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고 의원의 폭로 직후 반박 자료를 냈던 보르도와인협회의 입장은 미묘하지만 차이가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수입 와인의 에틸카바메이트의 검출량은 한국의 식약청에서 발표한 양보다 매우 높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된 실험과 분석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검출 과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이다. 보르도와인협회는 KBS의 보도 내용이 그 전까지 식약청이 밝힌 에틸카바메이트 검출량보다도 더 높다는 점을 문제삼은 셈이다. (보로드와인협회는 KBS 보도가 식약청 연구용역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실제로 식약청이 이번 연구 용역자료 이전에 다섯 차례에 걸쳐 조사ㆍ발표한 결과 검출량은 점점 낮아져, 올해 7월 말 검출량은 65~268㎍에 불과하다. 고 의원이 식약청 연구용역 자료를 근거로 밝힌 109~364㎍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발암물질 검출 실험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유통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성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의문을 품은 채 프랑스 땅을 밟았다.

프랑스에는 미국의 FDA나 한국의 식약청에 해당하는 농림부 식품국이 있다. 그러나 와인에 관해서는 따로 국립 와인 사무국(ONIVINS)을 두고 있다. 그만큼 프랑스의 대표 수출품인 와인의 품질과 규격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연구소는 별도의 연구반(CNIVE)에서 에틸카바메이트에 대해 관리를 하고 있다. 이 연구반에서는 정기적으로 에틸카바메이트 검출량을 발표하는 한편 저감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고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프랑스의 평균 검출량 5.8㎍은 이 기관이 최근에 밝힌 수치다. 와인사무국과 연구반에서는 보르도와인협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측의 실험과 분석 절차에 의문을 제기했다.

혹시 유통 과정의 문제로 에틸카바메이트가 증가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는 와인 전문가를 만나 보았다. 프랑스에서는 에놀로지스트(enologist 혹은 oenologist)라는 와인 양조 전문가들이 있다. 다니엘 포예(59)는 이들 가운데서도 단연 프랑스를 대표하는 전문가다. 세계 유수의 와인 사전이나 관련 서적에도 이름이 등장할 정도다. 그는 “같은 와인에서 다른 양의 에틸카바메이트가 검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배로 장기간 이동하더라도 박테리아가 없는 상태에서는 에틸카바메이트가 자연적으로 생성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인터뷰 전문 참조>. 그 역시 한국 식약청의 검사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프랑스에서와 같은 기준과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벌어진 해프닝일 것이라는 말이다.

와인 발암물질 논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제 식약청이 같은 수입 와인에서 다른 수치가 나온 이유를 정확히 규명할 차례다.


“한국 식약청의 검사 방식에 의구심이 든다”
세계적인 에놀로지스트 다니엘 포예(59) 인터뷰

와인 발암물질 전쟁 한 달,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와인 발암물질, 에틸카바메이트 논란에 관해 들은 바 있나.

“알고 있다. 와인에서 검출되는 발암물질인 에틸바카메이트 논란은 프랑스에서도 몇 년 전에 크게 문제가 됐다. 이 논란의 핵심적 사실 관계는 맞다. 와인 속에는 에틸카바메이트라는 물질이 존재하고, 이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물질로, 포도 자체에도 있다. 와인 말고 다른 주류에서도 다량 검출된다. 에틸카바메이트에 대한 관심은 전세계적인 것으로,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에틸카바메이트에 대한 프랑스 와인 업계의 입장은 무엇인가.

“프랑스에서는 국립와인사무국 (ONIVINS)이 정한 기준을 따른다. 이 곳에서 검사한 결과 프랑스 와인들은 모두 (학계에서 우려하는) 기준치 이하의 에틸카바메이트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와인사무국은 어떻게 에틸카바메이트를 규제하나.

“ONIVINS는 와인에 대한 기준을 정해 검사하며, 각종 관련 규제를 시행하는 곳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국제 단체의 성격도 있다. 와인을 제조, 판매하는 30여개국이 가입돼 있다.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내년에 가입한다고 들었다. 한국은 잘 모르겠다. 유럽에서는 ONIVINS 기준에 따라 에틸카바메이트 함량을 조사한다. 가장 최근 조사에 따르면, 모든 유럽 와인 함량이 기준치보다 낮았다.”

-그런데 왜 같은 프랑스 와인을 한국에서 조사했을 때는 에틸카바메이트가 훨씬 높게 나오나.

“같은 와인에서 다른 수치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 와인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는 추론도 있다.

“아무리 특이한 이동 경로를 거친다 해도 박테리아가 없는 상태에서 에틸카바메이트가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 박테리아 때문에 수치가 증가할 수는 있지만, 단순히 이동 과정에서 에틸카바메이트가 증가했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높은 검출량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에서만 그렇게 높은 수치의 에틸카바메이트가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다. 프랑스에서와 똑같은 검사 기준과 방법을 사용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한국 식약청의 검사 방식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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