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키워온 꿈 쇳물을 녹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15일 동부제강 제철공장 기공식이 열렸던 충남 당진의 동부제강 아산만 공장. 기념사를 읽어 내려가던 김준기(63·사진) 동부그룹 회장은 “20대 초반에 그렸던 40년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는 대목에 이르러 감개무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왜 이토록 감격했을까. 기공식 전 공장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 회장은 “제철사업은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늘 지녀 왔던 꿈”이라며 “이런 꿈을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실천해 온 결과가 오늘 기공식”이라고 말했다. 평소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김 회장이지만, 철강사업 도전의 역정을 소개하는 말투에는 열의가 담겨 있었다.

◆제철소와 비료공장이 어릴 적 꿈=“내가 태어난 면(강원도 삼척군 북삼면. 현재 동해시 북평읍)에는 일본인이 세운 비료 공장과 제철소가 있었어요. 그 공장을 보고 크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사업을 해봐야지’하고 생각했어요. 결국엔 둘 다(제철은 동부제강, 비료는 동부하이텍) 이룬 셈이지요.”

그가 말한 제철소는 바로 포스코의 전신 격인 삼화제철. 해방 직후 김 회장의 큰아버지인 김진팔(김 회장 부친인 고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둘째 형)씨가 잠시 사장을 하기도 했었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학생 때부터 반드시 국가 기반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이런 생각은 대학 시절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더욱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사업 초기인 1970년대 초, 김 회장은 경영 부실로 쓰러져가던 합금철업체인 삼척산업을 인수했다. 철강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제철에 들어가는 부원료를 만들던 합금철은 당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아) 천대받던 품목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철강업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인수했지요.”

철강을 향한 그의 집념은 84년 ‘장영자 사건’의 여파로 부도난 일신제강 인수로 전기를 맞는다. 이후 99년에는 외환위기 와중에서도 1조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냉연공장을 지었다. 두 공장 모두 주위에서는 무리라며 반대했으나 김 회장의 집념을 꺾지는 못했다.

◆글로벌 경쟁력 갖춘 철강회사 되겠다=세계적 수준의 냉연업체를 세웠지만 김 회장은 만족하지 못했다. 쇳물을 만드는 공장, 즉 제철공장 없이는 ‘원료 자립’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냉연의 원료인 열연(쇳물을 식혀 만든 강판)을 포스코와 외국업체로부터 사들여야 하는 ‘설움’과도 관련 있다. 원료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한 공급업체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 냉연업체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김 회장은 “(잔칫날에) 그런 이야기는 말자”며 함구했다. 동부제강의 제철공장은 전기로를 이용해 2009년부터 연간 250만t 규모의 열연강판을 생산하게 된다. 동부그룹은 포스코·현대제철에 이어 국내 세 번째로 원료까지 생산하는 철강업체가 되는 것이다.

“90년 미국 철강업체인 ‘뉴커(Nukor)’를 방문해 전기로 시설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전기 사정이나 기술 수준 때문에 우리가 시작하기는 힘들었죠. 하지만 98년 아산만 공장을 지을 때 언젠가 제철소를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여유 부지까지 확보해 두었어요. 결국 결실을 본 셈이죠.”

김 회장은 “동부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철강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두 주먹을 쥐어 보였다.

이현상 기자

◆김준기 회장=경기고를 나와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때인 69년, 직원 둘을 데리고 미륭건설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70년대 중동 건설현장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화학·금융·반도체·철강·서비스업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 계열사 26개, 자산 규모 16조6870억원(금융계열사 포함·공기업 제외 자산 규모 재계 13위 )의 동부그룹을 이끌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