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교 탈영사건 처리를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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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군 본부 영내에서 준장 한사람이 상사를 대동하고 걸었다.3명의 방위병이 마주 오면서도 경례를 하지 않았다.화가 난 장군이 상사로 하여금 기합을 주도록 명했다.상사가 그들에게 경례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그중 하나가『존경할 수 없 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전방의 어느 한 영관장교가 버릇없는 병사들에게 체벌을 가했다.병사들이 연대서명으로 사단장에게 항의서를 제출했다.사단장은 장교를 처벌했다.이번엔 장교들이 사단장의 처사에 항의하고 나섰다.사단장은 중간을 택했다.겉으로는 장교를 처벌하 고 속으로는아무런 처벌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이로 인해사단장은 병사들의 키만 키웠다.
키가 커진 병장들은 장교를 예사로 모욕했다.새로 전입해오는 이등병을 구타해 그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었다.방위병들은 병장들 에게 상납할 용돈을 가지고 다녔다.점심때면 방위병은 매운탕과 소주 한병을 사다가 바쳐야 했다.영악하기로는 방위병들도 한가지였다.어느 한 방위병이 소령의 사소한 꾸짖음에 앙심을 품고 동네 깡패들을 시켜 그를 폭행했다.
전방부대에 예비군이 훈련차 들어왔다.이들은 집단으로 부대기물을 파괴했다.그중 한사람이 위관장교들과 소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현역 병사를 구타했다.장교들이 이를 군법회의에 회부하자고대대장에게 강력히 건의했다.대대장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자기 부하들을 외면한 채 못본척 했다.
하극상 현상은 한국군 어디에서나 흔히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사고가 보고되면 그 자체로 지휘관은 불이익을 받았다.「다른 부대는 말없이 지내는데 왜 자네부대만 시끄러우냐」라는 것이 상부로부터 기대되는 말이다.
한국에서 유명했던 특수부대에서는 장교들이 하사관들에게 맞는 일이 자주 있다.그 부대에서의 가장 훌륭한 가치는 계급이 아니라 태권도 실력이다.장교들과 하사관이 동등한 자격으로 태권도 겨루기를 해야한다.장교들의 태권도 연습시간은 하사 관보다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이 부대에 들어온 하사관들은 대부분 고등학교에서 힘깨나 쓰던 청년들이다.이들을 이길 수 있는 장교들은 별로 많지 않다.그런데도 하사관에게 진 장교는 지휘관으로부터 점수를 얻지 못했다.하사관들에게 얕 보인 장교가 태권도장 밖에서 이들에게 매를 맞아도 하소연 할 데가 없다.
이 해괴한 일들은 하급 장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군과수뇌부에도 있다.육군의 모 2성장군은 요사이 정치실세에 확실한줄을 잡고있다.육.해.공군 4성장군 들이 그에게 맥을 못춘다는낯뜨거운 소문이 돌고있다.
어느 2성장군이 후방기관에 부임해 부대를 혁신적으로 개혁하려들었다.그곳에서 오랫동안 먹이사슬을 형성해 오던 기간요원들이 무기명 투서를 했다.군 수사관이 그를 불러『왜 당신만 시끄러우냐,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느냐,대령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행적에 대해 조사를 받겠느냐,아니면 조용히 나가겠느냐』고 위협했다.그러나 부정으로 언론을 크게 장식했던 몇몇 장군들은 단지수뇌부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요직에 앉아 있다.
더러는 소문에 불과할 지 모르나 이런 소문이 군내에 떠도는한,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존경받을 수 없다.이런 장군들이 이끌고 있는 한국군에 해괴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일이다. 이번에 두명의 초급장교가 군에 엄청난 방법으로 불만을표시했다.그들이 취한 방법은 장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그러나 그들의 돌출행동이 없었다면 지금도 이 엄청난 군문제는 노출되지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엄연한 실정법을 어겼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그러나 군사령탑은 이들보다 수백배의 무거운 책임을 져야한다.몰라서 이정도로 썩게 했다면 무능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며,알면서도 방치했다면 직무유기이기 때문이다.프로사회에서 몰라 서 일을 그르쳤다고 시인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
자기들이 져야 할 책임을 일부 장교들에게만 지우는 것은 더욱자기모욕적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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