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내 조선시대 행궁지 하궐(아래 궁궐) 앞마당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건물터.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축조된 주장성(晝長城) 관련 유적으로 추정된다. 위쪽 건물은 근래 복원한 행궁 상궐이다. 왼편 불규칙한 타원형이 기와 저장 시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조선시대 행궁지 복원 작업을 벌여 온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은 행궁 하궐 앞마당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 바깥 기둥터에서 6~7m 떨어진 배수로 뒤편에서 이 같은 초대형 기와 더미를 발굴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중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이 8장, 깨어진 조각이 수백 장 분량이다. 무게는 암키와 19㎏, 수키와 15㎏에 이른다.
이번에 발굴된 기와(18.94㎏)는 조선시대 기와(3.98㎏)에 비해 무게는 네 배, 두께는 세 배가 넘는다.
조사단장을 맡은 조 관장은 "출토 상태로 보아 실제로 대형 건물 지붕에 사용됐던 기와로 보인다"며 "19㎏짜리 기와 수천 장을 지붕에 얹었다면 그 무게를 건물이 도대체 어떻게 지탱해 냈을지가 현재로서는 가장 궁금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길이 53.5m, 폭 17.5m로 삼국시대 산성 건물터 중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터에서는 안팎 두 겹으로 줄지어 선 주춧돌과 배수용 돌 도랑도 확인됐다. 벽체는 자갈과 목탄을 깔고 점토를 올린 뒤 안팎에 돌과 기와 조각을 쌓아 올려 마감했다.
조사단은 이 터를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2년(672년)에 축조된 주장성(晝長城)과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했다. 현장의 탄화된 나뭇조각에 대한 방사선 연대 측정 결과 AD 600~900년으로 나온 데다 기와에 '甲辰年 末村主'(갑진년 말촌주) '天主'(천주) 등 신라시대 관직명을 새긴 것이 많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심 실장은 "도장으로 무늬를 찍은 토기, 파도 무늬 항아리 파편, 기와 제작 기법으로 볼 때 건물이 사용된 시기는 7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암키와, 수키와=지붕을 덮는 기와 중에 바닥에 깔린 것이 암키와, 위에서 암키와들을 연결하며 덮고 있는 게 수키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