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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연, 편견을 넘어 한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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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가령 2005년 6월 20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 느닷없이 시를 읊었던 일도 그렇다.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가 되라는’.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가 담겼다. 유일한 한국인 단가(短歌) 시인 손호연(1923~2003)의 작품이다. 단가는 5·7·5·7·7의 5구절 31음 형식의 일본 전통시다. 일본인들이 가장 아끼는 국시(國詩)다. 고이즈미 총리는 하고많은 작품 가운데 손 시인의 시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사연은 이렇다. 시인의 장녀 이승신(갤러리 ‘더 소호’ 대표)씨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모리 전 총리와 일본 작가에게 어머니의 작품집과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전달했다. 여기엔 손 시인이 1998년 일왕이 주재하는 신년어전가회 (新年御前歌會)에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참석한 장면이 포함돼 있었다. 그녀는 한복을 입고 최고 대가의 자격으로 일왕 부부가 낭송하는 시를 듣는 영예를 누렸다. NHK가 전국에 생중계했다. 앞서 97년 6월 일본인들은 아오모리현에 그녀의 시비(詩碑)를 세웠다. ‘그대여, 나의 사랑의 깊이를 떠보시려/ 잠시 두 눈을 감으셨나요’. 일본인의 심금을 울린 절창(絶唱)의 망부가(亡夫歌)를 새겼다. 손 시인의 존재는 다시 일본의 한 참의원을 거쳐 고이즈미 총리에게 알려졌고, 마침내 시 낭송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늘 그렇듯 여기서도 아쉬운 대목이 하나 남는다. 노 대통령은 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시를 인용한 뒤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까지 했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 대통령이 “손호연에겐 이런 평화의 시도 있다”고 화답했다면 어땠을까. ‘이웃해 있어 가슴에도 가까운 나라 되라고/ 무궁화를 사랑하고 벚꽃을 사랑하네’. 일본 정신의 정수인 단가를 낭송하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이 TV로 방영됐을 때 일본인들이 보일 반응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실 청와대 비서실은 고이즈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손 시인을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사전에 이승신씨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승신씨는 “고이즈미 총리보다 노 대통령이 먼저 어머니의 단가를 언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이 사랑하는 한국 시인’이 노래한 ‘양국 간 평화와 사랑’을 주제로 두 나라 정상이 펼치는 격조있는 문화적 대화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 에피소드는 양국관계의 복잡미묘한 측면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한 가해자 일본은 일종의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양국의 객관적 현실과 미래를 적극적으로 언급한다. 잘나가는 자의 여유일 것이다. 하지만 피해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아서일까, 우리에겐 일본이 어쩐지 부담스럽고 먼 존재다. 감정이 잘 정리되지 않다 보니 때로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기까지 하다.

이런 분위기는 손 시인의 생애에도 줄곧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비록 만년에 우리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긴 했지만 평생 “왜 한국인이 일본말로 시를 쓰느냐”고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시인은 누구보다도 성공적으로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일본인들에게 소개했다. 그녀의 시는 결코 일본시의 아류가 아니었다. 일본의 유명출판사 고단샤에서 낸 여섯 권의 가집(歌集) 가운데 다섯 권의 제목이 ‘무궁화’였다. 무궁화는 한국의 국화(國花)다. 단가의 뿌리가 1400여 년 전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백제라는 사실을 시인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치마저고리 곱게 단장하고 나는 맡는다/ 백제가 남긴 그 옛 향기를’이라고 노래했다. 해방·분단·전쟁의 역사도 담았다. ‘겨레가 말없이 순종하는/ 오욕의 날을 눈여겨보던/ 나라꽃 무궁화’. 여기에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풀어냈기에 일본인들도 흠뻑 빠져들었다.

‘겨울연가’와 욘사마(배용준)로 절정을 이뤘던 한류가 요즘 전 같지 않다. 일본인의 정서를 휘어잡는 킬러 콘텐트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도 손호연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손 시인이 60여 년간 창작한 2000여 편의 단가는 일왕과 평범한 시민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다. 그러면서 한국적 정서와 가치에 대한 공감을 일으킨다. 전쟁으로도, 무역으로도, 스포츠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쯤 되면 제대로 된 한류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적 요소를 불온시하는 혹독한 편견과 홀로 싸워 마침내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 우뚝 선 손호연의 치열한 일생이 눈물겹다.

이하경 문화스포츠담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