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너에게 나를 보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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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국영화 70년의 역사에서 아마 가장 난해하고 지루한 영화로기록될『화엄경』의 감독 장선우.그의 신작『너에게 나를 보낸다』역시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그러나 절대로,정말 절대로『너에게…』는 지루하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단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상습적인 잡담가도,영양과잉의 군것질 관객이라도 이제 혀 쾌락을 중지하여야 한다.그리고 오직 감독이 풀어놓는 영상과 음향의 낯 뜨거운 뷔페식단을 즐겨야 한다.예측불허의 상상력과 또그만큼의 당돌함으로 무장한 소설가 장정일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이 작품은 원작의 파괴력을 그대로 영상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동안의 영화작가와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해온 영화 표현의 법칙,관습 그리고 금기를 거의 하나도 지키지 않은「불량기」로 가득차 있다.
우선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가 표절시비로 당선이 취소돼 이제 도색소설이나 쓰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인「나」를 연기하는 대중적 스타 문성근은 「차가운 지식인」이미지에 이제 넌더리가 난 듯 전라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심지어 그는 초라하게 바지를 까고 수음하는 장면도 마다하지 않는다.그러나 문성근의 가상한 용기도「바지 입은 여자」정선경의 파격 앞에서는 빛을 바랜다.정선경은 연기자의 이미지관리 정도가 아니라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것같다.여기에 『세상 밖으로』의 연출자로 이미 우상파괴의 작업을 시작한 여균동의 은행원연기가 가세한다.
이 세 연기자의 전폭적인 협조와 존경 속에서 연출자 장선우는화려한 포르노그라피의 영상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전혀 어깨에 힘을 주지 않고 한없이 가볍게….게다가 이 영화는 파편과도 같은 총3백45개의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구성의 보편적인 원칙을 파괴해 버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명의 주인공이 펼치는 끝없는 경박함과 혼돈의 인생유전이 끝나 객석에 불이 켜지면「포르노그라피」로서의『너에게…』는 심각한「섹스 영화」로 새로이 탄생된다.관객의 무거운마음 속에서 그리고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 속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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