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황속의 부도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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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월중 평균 부도율(不渡率)이 0.2%로 사상최고를 기록했다.같은달 부도업체수도 1천46개로 사상 최다(最多)였다.이 수치는 9월에 다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전례없는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8월중 산업동향에서 나타났 듯 제조업 생산은 두자리수의 증가율을 보이고,제조업 가동률도 80%를 넘고 있으며,실업률은 2.2%로 사실상 완전고용상태로 일부에선 과열(過熱)마저 우려하는 판에 나타나는 이같은 부도율.부도업체증가는 우리 경제에 내재(內在)한 구 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있다.
시중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통화당국은 돈이 너무 풀려 걱정할 정도다.문제는 그 돈이 정말 사정이 급한 영세.중소기업에가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기술개발.생산성 향상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데 실패한 기업 자체의 문제며,둘째는 국내 금융기관의 뿌리깊은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이다.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업종.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당연하다.오히려 이런 구조조정이 정치.사회적 이유로 지연되어 왔다고 볼 수도 있으며,경기호전 속의 부도증가라는 현상 자체가 이러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란분석도 가능하다.
문제는 잘만 손을 쓰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업들까지 갈팡질팡하는 통화정책,담보나 보증이 없이는 넘어보기 힘든은행문턱,시늉뿐인 보증제도,발표만 요란한 중소기업 지원대책 속에서 쓰러져 나가고 있다는데 있다.
부도업체와 부도율이 사상 최대라는 발표에 화들짝 놀라 중소기업 지원자금을 얼마 늘린다는 식의 대증요법(對症療法)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현재의 대출관행이 바뀌지 않고는 돈을 풀어도 영세 중소기업에는 돌아가지 않는다.이러한 관행 의 시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또 중소기업 스스로도 기술개발이나 생산성향상,나아가 업종전환등 구조조정과정에 대한 적응노력을강화하고,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시책은 이를 뒷받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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