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업부도-현장의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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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중소기업 사장의 신용상태가 대기업의 대리만도 못합니다.』 주택건설업체에 주방가구를 주로 납품하는 빅파인가구의 심동철(沈東哲)사장은 중소기업이 처한 자금난의 주된 이유를 이 말로 대신한다.자신은 은행돈 쓰기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대기업에 근무하는 대리급 후배들을 보니 카드대출등을 이용해 5 백만~1천만원은 가볍게 쓰고 있더라는 것.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金모사장은 정부에서 중소기업자금 지원을 늘린다고 발표할 때마다 배신감을 느낀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혹시나 하고 은행문을 두드려 보지만 담보를 요구하는 관행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대기업과 거래를 하거나 부동산도 많고 경영상황이 탄탄한 중견기업들은 자금이 필요없는데도 돈을 더 쓰라는 권유를 받는 것을 여러차례 봤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부가 1조원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돈을 푼다 해도 전체 중소기업의 70~80%를 차지하는 영세 중소기업의 돈상황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지난해부터 대량화하기 시작한 중소기업 부도가 올들어 더욱 증가하고 있고 실제 전체부도의 99.9%는 중소기업일 정도로 중소기업 부도사태가 심각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종업원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대기업에 납품하는등 안정적인 판로와 제품력을 갖춘 중견기업군에 대한 정부자금지원책은 실효를 거둘지 모르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세업체들은 정부지원에서 거의방치된 때문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정부지원에서 배제된 영세 중소업체들이 특히지난해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력난과 판매난에다 자금난마저 가중돼이제 한계상황에 몰린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기협중앙회의 분석으로도 올해 대거 도산하는 업체의 경우 대기업에 납품하는등 판로를 확보하고 있는 업체보다는 뚜렷한 판로없이 자기브랜드로 물건을 파는 경공업분야의 많은 중소 영세업체들이 대거 도산하고 있다는 것.
일부 우량 중소기업을 제외한 다수 중소기업들의 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자금난 완화와 함께 중소제품의 인지도 향상과 제품력강화,기술.인력문제해결등의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즉 『중소기업이 어렵다더라.지원액을 늘려라』따위의 대증요법으로는 이같은 구조적 부도행진을 결코 늦출 수 없다는 게 공통된시각이다.
박상규(朴尙奎)기협중앙회장은 기존의 중소기업지원시책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대출방식을 전면 개편할 것을 주장한다.중소기업들이 물품을 납품하고 대금으로 어음을 받는 관행을 전면 금지하는한편 대출관행도 담보보다는 대출자금의 연체나 공 과금납부실태,사업비전,인간적인 평판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새로운 대출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洪源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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