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27) 『내가 무슨 생각을 하다니.나 생각같은 거 하지 않은 지 오래다.그리고….
』 『뭐냐?』 『너희들이 태길이를 반쯤 죽여놓은 것도 나는 안다.나보고 거기,그 패거리에 끼라는 얘기냐? 다음은 조씨 차례라고 소문들까지 무성하던데.그래서? 조선놈끼리 조선놈 일러바치는 건 잘못이고,조선놈이 작당해서 조선놈 잡아 족치는 건 옳은일이다 그런 얘기냐?』 『역시 맞기는 맞구나.』 『뭐가?』 『네가 왜놈 편으로 돌아섰다는 거.』 『그건 너희들 마음대로 생각해.나도 막장에 끌고 들어가서 곡괭이로 내리쳐 다리 부러뜨려놓고,그리고 낙반사고라고 할 거냐?』 잡혀 있던 손을 놓고 길남이 뒤로 물러섰다.
『바로 말하마.난 거긴 끼지 않는다.』 『좋다.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게 아니다.너 나랑 함께 가자는 말이다.』 『가긴? 어딜 가?』 『육지.』 태성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길남의 얼굴이 질렸다.이 친구가 어떻게 그걸 다 눈치채고 있었다는 건가.내가 그렇게 표를 내고 다녔다는 건가.
『무슨 소리냐?』 『안다.다 안다.』 『뭘 알아? 사람 날로잡지 말아.』 『네가 도망칠 준비를 하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안단 말이다.그러나.』 태성이 잠시 말을 끊었다.
『그건 혼자서 할 일이 아니다.혼자서는 더 힘든다.함께 가자는 얘기다.이 말을 하려고 얼마나 틈을 보았는지 아냐?』 『부탁이다.함께 가자.』 『넌 너 혼자 해도 넉넉한 사람 아니냐.
』 『짝을 맞추자는 이야기다.
둘이 마음만 합하면 둘이 아니라 셋도 되는 거 아니냐.』 이제는 더 무엇을 숨길 수도 없겠구나 싶어서 길남이 물었다.
『내가 도망치려고 하는 건 어떻게 알았냐?』 『느낌이 그랬다.』 고개를 숙였다가 들며 길남이 말했다.
『둘이 아니라 셋이 될지도 모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