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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쏙!] ‘진로 내비게이션’으로 직업 길잡이 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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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들어온 학생들의 상당수가 대학에 들어온 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일하며 삶을 개척할지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지 않다. 다만 막연히 취업을 위해 학점을 잘 따고 영어 공부하는 데만 짓눌려 있다.” (서울대 사회대 A교수)

 “최근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에 바로 진학하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화려한 미래가 보장돼 보이지만 정작 현지 학생들에게 주눅 들어 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미래 직업 세계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학습법 업체 대표 B씨)
 
 학부모의 가장 큰 관심은 자녀의 ‘진학’에 대한 것이다. 특목고 진학을 시킬 수 있을지, 어떤 대학을 갈 수 있을지에 집중돼 있다. 진학과 관계돼 학교와 학원에 대한 정보는 열성적으로 모은다. 그러나 정작 자녀의 ‘진로’에 대한 관심은 막연하다. 진학에 따라 진로가 결정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까지 있다. 원하는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했지만 정작 ‘진로 결정’에 실패하는 이가 많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학부모를 위한 자녀 진로지도 교육 프로그램인 ‘커리나비(CAREer NAVIgation)’를 개발했다. 자녀가 진로를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도와주기 위해 부모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다. 초·중·고 등 단계별로 진로 지도에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연구팀의 서울여대 김지현 교수와 한국고용정보원의 노경란 부연구위원으로부터 자녀 진로 지도에 대한 도움말을 들어 봤다.

 ◆“부모의 과거는 아이의 미래가 아니다”=부모가 자신의 좌절된 꿈을 실현하는 의미에서 자녀의 진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가 많다. 김 교수는 “부모의 꿈이라는 것은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부모가 자신의 수십 년 전의 가치관을 갖고 자녀의 수십 년 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직업 세계가 끊임 없이 변한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무조건 변호사나 의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노 위원은 “외환위기 시절을 겪은 부모는 고용 안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 전문직이나 공무원 등 안정적 직업을 권하는 수가 많다”며 “안정성뿐 아니라 업무의 역동성도 직업 선택의 중요한 가치인데 이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면 자녀의 진로 결정에 왜곡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전적 보상, 시간적 여유, 일의 안정성, 업무의 자율성 등 직업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하고 대립되는 가치에 대해 자녀가 어떤 점을 중시하는지 깨닫게 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조기 진로교육 절실”=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진로성숙도(CMI: Career Maturity Inventory)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성숙도란 직업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자기 자신의 진로를 합리적으로 계획해 결정할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이다. 노 위원은 “미국에선 중·고생 대상의 ‘잡 섀도 프로그램(Job Shadow Program)’이란 것이 활성화돼 있다”며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기업 탐방 등을 통해 청소년이 갖고 싶은 장래 직업을 실제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최근 한국고용정보원 등에서 청소년 직업체험 학교인 ‘잡스쿨(job school)’이 도입돼 참여가 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직업 선택 과정을 보면 당시의 유행이나 부모의 바람 등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수가 많다”며 “때가 되니 취직하는 식의 직업 선택 탓에 1년도 되지 않아 직장을 그만 두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또 ‘금전적 보상’을 직업 선택의 최고 가치로 삼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좌절감에 시달리거나 목표를 이뤘다 해도 금전적 보상 이상의 직업 만족도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고교 때 충분한 직업 탐색 없이 성적에 따라 대학을 정하고 전공을 택하기 때문에 전공을 바꿔 편입을 하고 의미 없이 대학원 진학을 하는 등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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