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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기술] 콜라 100년의 역사를 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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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2004년 말 세계 산업사에 일대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음료업계의 지존 코카콜라가 2위 펩시에 밀려난 것이다. 펩시는 연매출 292억 달러를 기록하며 219억 달러를 올린 코카콜라를 확실하게 눌렀다. 콜라 판매만 놓고 보면 코카콜라가 1위였지만, 제품군 전체로는 펩시가 코카콜라를 앞질렀다.

급기야 2005년 12월에는 기업가치로도 펩시가 코카콜라를 앞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당시 펩시는 시가총액 984억 달러로 965억 달러에 머무른 코카콜라를 보란 듯 제쳤다. 코카콜라 주가는 네빌 아이스델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18개월 동안 무려 17%나 떨어졌다.

그 사이 펩시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다. 코카콜라가 100년 넘게 쌓은 아성은 만년 2위일 줄로만 알았던 펩시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코카콜라를 가치투자의 대표 종목으로 꼽았던 전설의 투자자 워런 버핏이 울고 갈 일이었다.

코카콜라의 대체 브랜드쯤으로 취급받던 펩시가 어떻게 콧대 높은 코카콜라를 이길 수 있었을까. 역전의 비결로 손꼽히는 것은 다름 아닌 변화다. 정확하게는 ‘변화를 읽은 눈’이었다. 100년 동안 사람들의 갈증을 달래 온 콜라는 2000년 이후,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됐고, 콜라 회사는 맥도널드 햄버거와 함께 “비만을 판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콜라가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주장은 지난 100년 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콜라는 담배처럼 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기 힘든 상품이다. 오랜 세월 콜라 카페인에 중독된 소비자 덕분에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분 웰빙 바람에도 콜라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달라져야 코카콜라 앞지른다”

콜라 판매 증가세가 다소 둔화하기는 했지만, 건강 신드롬이 일 때마다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넘길 수도 있었다. 적어도 코카콜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1982년 이른바 ‘다이어트 콜라’를 출시한 이후로 코카콜라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찾지 않았다.

펩시 역시 콜라가 비난의 표적이 됐다고 주력 상품인 콜라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콜라뿐이 아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프리토레이 스낵 생산을 중단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프리토레이는 소금이 함유된 과자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펩시는 코카콜라처럼 남의 일로 방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웰빙 열풍이 몰고 온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건강음료 시장에서 새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편 것이다. 제품 구성을 지방과 설탕, 나트륨 함유율이 낮고 칼슘처럼 몸에 좋은 성분 함유율이 높은 과자와 음료로 재조정했다.

이 때문에 제조원가가 올라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건강에 좋으면 비싸도 좋다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펩시는 건강에 좋은 성분을 보강해 기존 제품을 개선했다. 콜레스테롤·심장병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방산을 제거한 새로운 도리토스·치토스·토스티토스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새 제품을 선보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조 과정에서 경화유 대신 옥수수 기름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여기에 과일 주스, 이온 음료, 생수 등 건강에 좋다는 음료를 잇따라 출시했다. 그 결과 펩시의 탄산음료 비중은 20%대로 줄어들었다. 펩시는 더 이상 콜라 브랜드가 아니었다. 반면 그때까지도 코카콜라의 탄산음료 비중은 80%에 육박했다.

펩시의 이런 변신이 처음부터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다. 새로 출시한 식품이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펩시의 광고를 100% 믿어줄 소비자도 없었지만, 펩시가 쏟아내는 새 음료와 과자가 정말로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펩시는 자체적으로 제품이 건강에 유해한지 검사해 합격하면 ‘스마트 스폿(Smart Spot)’이란 스티커를 붙여 소비자에게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어도 펩시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만큼은 분명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코카콜라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랬다.

코카콜라는 변화에 두려움이 있었거나 아니면 변화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누려 온 영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감처럼 보였지만, 자만에 가까웠다. 아이스델 회장은 눈앞의 이익을 높이는 데 급급했다. 단기 이익을 높이려면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전 코카콜라 CEO들의 방법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펩시가 발 빠르게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이렇다 할 사업 아이템을 내놓지 못했다. 다른 식품이나 소비재 쪽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충분한 자금(적어도 50억 달러)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96년 펩시가 사업 다각화 전략을 내놓자 당시 코카콜라의 로베르타 고이제타 회장은 “더 이상 펩시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 이미지에도 적잖은 손상을 입었다. 펩시가 웰빙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안 코카콜라는 구태와 방만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에서 회계부정 스캔들에 휘말리는가 하면, 유럽에선 독점 관련 소송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콜롬비아 공장에서는 노동자를 탄압했다는 비난을 받고, 인도 공장에서는 환경을 오염시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콜라 원액 가격을 인상하려는 남미 협력업체들과의 갈등도 끊이질 않았다. 모든 것이 변화보다는 기존의 관행을 고수하려는 경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지 전쟁에서도 승리

펩시가 코카콜라를 이긴 비결은 ‘확실한 2등’ 전략에서도 찾을 수 있다. 펩시는 코카콜라와 양강 구도를 만들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2위 자리를 뺏거나 노리는 만만찮은 경쟁사들을 확실하게 따돌리기 위해 가격을 파격적으로 인하한 것이다. 심지어 절반으로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닥터페퍼나 로열 크라운 같은 경쟁업체들은 펩시와 경쟁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내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들 업체가 체력이 소진한 것을 확인한 후, 펩시는 다시 가격을 정상화했다. 아주 짧은 기간에 3위 이하 업체들을 저만치 따돌리고, 펩시는 코카콜라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확실한 2등이 된 펩시는 1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80년대 펩시는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는 1위 코카콜라를 겨냥한 것이다. 1위는 오래된, 그래서 정체된 세대며, 2위는 새로운, 변화하는 세대라는 차별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펩시는 코카콜라와 나이 차가 고작 7년밖에 안 나는데도 엄청난 세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광고 전략에서도 펩시는 파격적이고 도발적이었다. ‘코카콜라보다 펩시가 맛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TV 광고로 보여준 것이다. 모델이 눈을 가리고 시음한 후 맛있다며 집어든 콜라의 상표가 펩시라는 상황을 그대로 내보냈다.

이런 기법은 저평가되던 펩시가 제대로 대접받게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기성 세대보다는 코카콜라에 덜 중독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펩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화제가 됐다. 어느 순간 코카콜라와의 점유율 격차는 30%대에서 10%대로 좁혀졌다.

펩시는 코카콜라와 싸우기 위해 콜라와 어울리는 외식 브랜드와 연대하는 전법도 썼다. 피자헛, KFC는 물론 멕시코 외식업체인 타코벨과도 손잡았다. 이들 외식업체를 찾는 소비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는 펩시콜라를 마시게 됐고, 어느덧 그 맛에 익숙해졌다.

수성을 해야 하는 1등은 방어 본능으로 보수성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언젠가는 그 틀이 딱딱하게 굳어져 깨지게 마련이다. 1등을 노리는 2등에게 말이다.

이임광 기업전문기자 llkhkb@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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