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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총리, 오른손 미국 왼손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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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사진) 총리가 미국과의 '밀월 동맹'을 유지하면서 아시아도 배려하는 쪽으로 외교정책의 방향을 틀고 있다. 지금까지 '양손 모두 미국 정책'을 구사했다면 앞으로는 '오른손에는 미국, 왼손에는 아시아'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총리는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해 16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고, 이어 다음달 하순에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일 언론들이 12일 보도했다. 일 외무성 관계자는 "일.중 두 정상은 이른 시일 안에 만나 양국 공동의 이익을 확대하는 '전략적 호혜관계' 구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은 예고된 만남이다. 후쿠다 총리는 취임 직후인 9월 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전화로 이를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 국내 정정이 상당히 불안한데도 후쿠다는 이를 무릅쓰고 방문을 추진,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일본 중의원 특별위원회에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테러대책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집권 자민당과 민주당의 대립이 더욱 격렬해졌다. 민주당은 이 법안이 중의원 본회의를 거쳐 참의원으로 넘어오면 부결시키고 불신임 차원에서 총리 문책 결의안까지 추진할 방침이다.

국내 정치가 이렇게 긴박한데도 후쿠다 총리가 중국 방문을 추진하는 것은 중국과의 불신이 더 깊어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에 걸친 6년여 동안 미국만 중시하는 일방 외교를 펼쳐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올 4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미.일 동맹이 이렇게 강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와 전략물자 수출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보다 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고이즈미.아베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중국은 미.일 밀월을 경계하면서 군비 확충에 박차를 가했고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 사이 북.미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미.일의 밀월 동맹에 틈새가 벌어졌다. 인도양 급유지원 활동이 11월 2일부터 중단되면서 미국은 일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 리스트에서 빼는 과정에서 일본의 납치자 문제 선 해결 요청에도 별로 귀를 기울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들이 후쿠다 총리가 미국에 이어 급히 중국에 달려가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들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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