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치는 '空회전'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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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끄지 않으면 딱지를 뗄 겁니다."

"따뜻하게 데워 놔야 손님이 좋아할 거 아냐."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고속터미널 주차장.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어 놓은 채 20여분간 승객을 기다리던 고속버스 운전기사들과 서초구청 공회전(空回轉) 단속반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운전기사 朴모(54)씨는 "날씨도 추운데 떨면서 배차시간을 기다리란 말이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자 단속반원들은 "규정상 어쩔 수 없다. 처음이라 봐주지만 또 걸리면 딱지를 떼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대기 오염의 주범인 자동차 매연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서울시가 올 1월부터 공회전 차량에 대한 단속을 벌이면서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휘발유와 가스 사용 차량은 3분, 경유 사용 차량은 5분 이상 공회전 하면 과태료 5만원을 물리겠다는 게 서울시 방침. 다만 기온이 영상 5도 이하나 영상 25도 이상일 때에는 난방.냉방을 위해 10분간만 공회전을 일시 허용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냉.난방을 위해 손님들 대부분이 시동을 켜 놓고 영화를 관람하는 자동차 전용 극장 5곳의 경우 "영업을 포기하란 얘기냐"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연간 32만7천여t의 대기 오염 물질(지상 배출 기준) 가운데 65%를 자동차가 내뿜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불필요한 공회전을 10분만 중지하면 승용차 2백50㎖, 경유차 2백84㎖ 등 연간 8만9천㎘(1천1백억원 어치)의 연료를 아낄 수 있고, 오염물질 배출량도 3천7백여t 줄일 수 있다고 시 측은 강조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한달여 동안 1백80명(25개구 포함)의 공무원을 투입해 올린성과는 지난 10일 현재 과태료 2건 뿐이다.

▶터미널▶차고지▶노상주차장▶자동차전용극장▶상암월드컵경기장 주차장 등 1천47곳에 공회전 규제 표지판을 설치하고 '단속의 칼'을 꺼내들었지만 실효가 없었다. 택시기사 李모(38)씨는 "잠시 쉬고 있는데 단속반이 딱지를 떼겠다고 해 멱살잡이까지 했다"고 말했다.

단속반원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공회전 중인 차량이 출발을 위한 예비단계 인지, 또 3분.5분이 정확히 지났는지, 기온이 5도 이하인지 등을 일일이 체크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서초구청도 "주.정차, 차선 위반 등은 사진을 찍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공회전 단속은 운전자가 시동을 끄고 오리발을 내밀면 증거를 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김정희 간사는 "공회전의 불필요성에 대한 홍보와 계도를 강화하고 경유차를 천연가스차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이 더 현실적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달 중순 이후부터는 단속을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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