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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1학년 아이들을 시켜서 탐색한 바에 의하면,교문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양아치들은 열다섯 명 내외였다.놈들은 그야말로 정통양아치였다.차림새부터가 완전히 막가는 아이들이었고,무장도 단단히 차리고 나온 것 같았다.야구방망이를 들고있꽉 녀석도 있었고,멀리서 보기에도 쇠파이프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옆구리에 끼고 있는 놈도 보였다.재크나이프나 인디언 손도끼나 자전거 체인이나 그런 것들은 아마도 기본으로 지니고 있을 게 뻔했다.
악동들과 동우가 건영이에게 몰려가서 긴급대책구수회의를 가졌다.우선 우리가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우리학년과 1학년 아이들 중에서 기죽지 않고 나설만한 아이들을 꼽아보니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건영이 다꾸 에게 연락을취해서 병력 동원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겠다고 했다.삐삐로 음성사서함을 이용하면 연락이 닿기는 할 거라고 했다.
건영이가 공중전화가 있는 매점으로 간 사이에 왕박이 은근히 우리가 모여 있던 복도 끝쪽으로 와서 기웃거렸다.
『넌 웬 일이야.뭐 나한테 할 말이라두 있니.』 내가 왕박쪽으로 몇발짝을 가서 물었더니 왕박이 말했다.
『…으음,나두 들었는데 말이야,나같으면 오늘은 적당히 뒷문으로 해서 집에 가겠어.아무 준비도 없다가 무조건 맞붙는 건 어리석은 일이잖아.』 사실 왕박의 말은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나를 포함해서 악동들 모두가 내심 기다리고 있던 말인지도 몰랐다.하지만 다꾸에게 삐삐를 치고 온 건영이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건영이가 보인 반응은 의외였다.
『다른 생각하지 마.죽은 성식이가 당한 걸 생각해보잔 말이야.바른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찾아다니면서라도 붙어야 할 놈들 아니냐구.』 그 말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우리에게 졸지에 분노와 용기가 불끈 솟아나게 만들었던 거였다.
『다꾸는…?』 『음성사서함에 남겨뒀으니까 곧 상황이 전달될 거야.일단 종례가 끝나면 선수들은 다들 목공소 뒤로 모이라구 해.』 교실 분위기도 어딘가 어수선했다.다른 아이들이 우리 악동들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그래,우리는 뒷걸음치면서 짖지는 않을 거야.
『달수…안싸우면 안되는 거니….』 종례를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데 하영이가 복도에서 그랬다.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계단을 몇개 내려서다가 하영이를 뒤돌아보고 웃어주었다.
목공소에 모인 우리 선수는 모두 열한 명이었다.담 너머로 보니 도끼네가 신촌역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우리가 쪽지를 보낸 거였다.「학교앞은 양쪽에 좋을 게 없다.신촌역 앞에서 보자.」 우리도 목공소에서 각목 하나씩을 골라서 집어들었다.딸딸이 아저씨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성식이를 괴롭힌 녀석들이 왔다고 하니까 못본척 해주었다.
우리가 신촌역 앞에 버티고 서 있던 도끼네를 발견하고 서서히다가섰다.나는 성식이를 생각했고 그래서 도망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건영이가 앞으로 나서서 통수와 몇마디 주고받다가 통수의 주먹을 피하면서 소리쳤다.붙어.순식간이었다.
몽둥이와 주먹과 발길질과 쌍소리들이 난무했다.어디선가 한떼의건달들이 뛰어들며 가세했는데 언뜻 보이는 게 다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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