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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퇴직금은 옛말 계획 세워 굴려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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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8면

남들이 주식으로 억(億)소리 낼 때 상투만 잡았다고요? 강남 부동산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고요? 그렇다고 노후 지붕이 와르르 무너지는 건 아닙니다. 퇴직연금이 제법 쓸 만한 대들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낯선 퇴직연금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퇴직연금의 ‘100% 활용법’을 소개합니다.

퇴직연금 100% 활용법

2005년 11월 시행
공기업에서 일하다 10년 전 은퇴한 박모(65)씨는 당시 억대의 퇴직금을 받았다. 박씨는 퇴직금에다 적금·대출금 등을 보태 서울 변두리 시장 골목에 있는 3층 건물을 샀다. 짭짤한 임대소득이 든든한 노후 돈줄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퇴직금에서 얻은 수익을 지렛대 삼아 얼마 전부턴 작은 식당까지 운영해 활기찬 ‘인생 이모작’에 성공했다.

박씨 사례처럼 두둑한 퇴직금이 쏠쏠한 노후 밑천일 때가 있었다. 1961년에 도입된 퇴직금은 변변한 사회보장 장치가 없던 시절에 나름의 몫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매섭게 변했다.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자 퇴직금 한 푼 못 챙기고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이 허다했다.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기업들은 퇴직금 부담을 덜기 위해 중간정산제를 잇따라 도입했고, 설익은 퇴직금을 손에 쥐었다 생활자금으로 까먹은 사례도 많았다. 특히 퇴직금이 급여에 포함된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이 이제 절반을 넘은 데다 직장을 옮기는 메뚜기족도 확산돼 평균 근속연수가 5년이 안 된다. ‘억대 퇴직금’은 먼 추억이 된 것이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게 ‘퇴직연금’이다. 기업 도산이나 이직과 상관없이 퇴직금을 잘 굴릴 수 있는 텃밭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외환위기로 퇴직금 누진제에 부담을 느낀 재계가 볼멘소리를 하던 98년에 노사정위원회 의제로 처음 채택돼 많은 논란을 거쳐 2005년 11월 첫발을 내디뎠다.

퇴직금 先투자 상품
아직 퇴직연금은 생소하다. 복잡한 용어에 직접 퇴직금을 굴려야 한다니 거부감을 느낄 만하다. 가입자도 아직은 38만여 명에 그친다. 그러나 퇴직연금 세몰이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현재 적립금이 총 1조7000억원으로 1년 만에 300%가량 불었다.

퇴직연금이란 쉽게 말해 한꺼번에 받던 퇴직금을 55세부터 달마다 꼬박꼬박 연금으로 받는 제도다. 물론 일시금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동안 퇴직금은 회사가 ‘장부상’으로 돈을 쌓았다가 퇴직자가 생기면 돈을 지급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망하면 퇴직금도 허공으로 날아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은 기업이 퇴직금을 때마다 증권사·은행·보험사에 실제로 돈을 넣어 이를 불린다. 일종의 ‘퇴직금 선(先)투자’로 보면 된다. 최근 돈뭉치가 ‘은행 저축→펀드 투자’로 옮기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이미 비슷한 시장 흐름을 겪은 선진국에서도 퇴직연금은 개인연금·국민연금과 함께 3중 안전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회사가 퇴직연금제로 전환하려면 먼저 근로자 과반수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어떤 금융회사에 퇴직금을 맡길지도 노사 협의로 정한다. 그 다음엔 방식을 고르면 된다. 이게 좀 복잡하다.

상품 유형 세 가지
퇴직연금 갈래는 세 가지다.
첫째는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이다. 매년 쌓는 기여금(퇴직금)이 미리 정해지고, 대신 이 돈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나중에 받을 돈이 달라진다. 일단 회사는 해마다 평균 임금의 12분의 1이상을 적립해준다. 직원은 이 돈을 외부의 금융회사를 통해 펀드·채권 등에 투자한다. 따라서 위험 부담도 직원이 진다.

둘째가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이다. 나중에 받을 퇴직금을 미리 정해둔 것이다. 회사가 정기적으로 부담할 기여금은 퇴직금 운용 성과에 따라 달라진다. 위험 부담을 회사가 지는 구조라는 얘기다. 일시금 기준으로 근로자가 받는 돈은 기존 퇴직금(한 달치 평균임금×근로연수)과 같다. 현행 퇴직금 제도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장부상 퇴직금과 달리 예상 퇴직금의 60% 이상을 금융회사에 예치해 놓아야 한다는 게 다르다. 기업은 적립액이 비용으로 인정돼 법인세를 덜 내는 장점이 있다.
셋째는 개인퇴직계좌(IRA: 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다. 직장을 옮기거나 중간정산으로 받은 퇴직금을 굴리는 장치로, 개인 이름의 계좌에 넣어 굴린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금융회사와 계약을 한다.

‘갈아타기’로 수익 극대화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퇴직연금 활용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래픽 참조>
입사 10년차인 김모(40) 부장은 올해 회사가 퇴직연금제로 전환하면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했다. 그가 받은 퇴직금은 6500만원. 김 부장은 55세에 퇴직할 전망이다.
먼저 그는 중간정산금을 IRA에 넣어 굴릴 수 있다. 연 수익률 10%로 꾸준히 운용하면 55세엔 2억7000만원이 쌓인다

다음 과제는 앞으로 받을 적립금을 어떻게 굴리느냐다. 그런데 김 부장의 회사는 DB형과 DC형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미래에셋증권 박용조 퇴직연금자산운용컨설팅 팀장은 “큰 기업들은 직원들의 투자성향과 선택권을 고려해 두 가지를 고를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일단 김 부장은 10년간 DB형을 활용키로 했다. 미래에셋 박 팀장은 “대리·과장 시절엔 급여 인상폭이 크지만 고참 간부가 될수록 그 폭이 적기 때문에 젊었을 때는 안정적으로 퇴직 적립금이 많아지는 DB형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처음부터 DC로 굴려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DC는 투자위험을 스스로 떠안는 만큼 부담스럽다. 따라서 급여가 많이 뛰는 시기엔 회사가 책임지는 DB형을 활용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이어 김 부장은 50세가 됐을 때부터 6년 동안은 DC형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50세까지 DB로 쌓인 퇴직금은 8700만원이다. 이 돈을 DC계좌를 통해 연 10% 수익률로 굴리면 1억8000만원이 된다. 이제 IRA와 DC형을 더하면 55세에 받는 일시금은(10% 수익률 가정) 4억5000만원이 된다. 20년간 연금으로 받으면 매달 44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물론 현재가치로 따진 금액이기에 물가가 제법 뛰었을 연금 수급 시점에 피부로 느끼는 돈의 가치는 낮을 수도 있다.

금감원, DC형 규제 완화 추진
퇴직연금을 잘 활용하면 은퇴를 몇 년 남기지 않고도 적지 않은 혜택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올해 퇴직금 1억원을 중간정산으로 받은 연봉 5000만원의 중소기업 이모(50) 부장을 보자. 연 5% 수익률로만 굴려도 55세에 1억6000만원으로 불릴 수 있고 20년간 월 100만원씩 받을 수 있다.

다만 연 10%, 15%의 수익률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선진국의 이름난 펀드매니저들도 매년 20% 수익률 올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정도다. 투자 지식을 쌓고 시장 흐름을 익히는 습관이 몸에 배야 한다. 특히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DC형일지라도 지금은 주식을 40% 아래로 편입한 펀드에만 가입할 수 있다. 올해처럼 주식시장이 훨훨 날 때 이런 제한이 있다면 퇴직금 수익률도 높이 뛰긴 어렵다.

그래서 금융감독 당국도 팔을 걷고 나섰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DC형에 대해 적립금의 50%까지 ‘주식형 펀드’(주식 70% 이상 편입)에 가입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제가 너무 까다로워 수익률이 떨어져 애초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맞춤형 양복이 빛난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개인마다 다른 투자성향과 직장 특성부터 따져봐야 한다. 이직이 잦아 근무기간이 짧거나 퇴직금 지급 능력이 떨어지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면, 퇴직금의 근속연수 혜택이 없고 정해진 돈을 받아 이 돈을 굴리는 DC형이 유리하다. 반면 DB형은 월급이 연공서열에 따라 꾸준히 오르고, 월급 떼일 걱정이 없는 업체에 어울린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다. 전체 퇴직연금 중 DB형이 62%에 이르고, DC형이 26%, 나머지가 IRA다. 아직은 보수적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경향이 짙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계좌를 통해 투자한 상품 중 원리금 보장형이 80%를 넘는다. 가장 많은 퇴직금을 유치한 곳이 생명보험사(49%)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보험사 퇴직연금의 3분기 수익률은 1%대에 그쳤다. 연율로 4%대다. 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증권사 중에선 그나마 4~6%대 분기 수익률을 올린 곳이 나왔다. 증권사 특성상 좀 더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 경험이 없는 근로자라면 금융회사의 ‘트랙레코드’(수익률 기록)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A증권사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은행·보험사들은 정기예금과 확정금리형 상품(GIC) 등에 주로 투자해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몇 %포인트씩 10년, 20년 수익률 차이가 계속되면 나중에 쥐는 퇴직금 차이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특히 DC형은 금융회사들이 가입자 교육을 잘해야 하는데 이게 귀찮고,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가 손실 투자자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어 안정적인 상품에 밀어넣는 사례가 많다.

연금이 일시금보다 세금 유리
퇴직연금은 5년, 10년, 20년 등으로 노사가 정하는 기간에 따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연금으로 받을 때 소득세는 퇴직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낮다. 또 연금을 타는 동안 과세가 미뤄지기 때문에 실질소득이 증가하는 효과가 난다.

목돈이 필요하면 중도인출제와 담보대출제를 활용할 수도 있다. 중도인출은 DC형에만 적용된다. 무주택자의 주택구입, 가입자나 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 천재지변 등 법이 정한 조건에 맞을 때 이용할 수 있다. 담보대출은 DC형과 DB형 모두 가능하고, 중도인출 때와 같은 사유가 있어야 한다. 담보대출 허용금액은 예상 급여액의 50% 이내다.

소득공제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DC형에서 회사가 내는 적립금 외에 근로자가 추가로 부담금을 불입하면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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