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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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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3면

“나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한데, 어쩌다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되었을까.” 원로 여배우 최은희(77.사진 왼쪽)씨는 지난주 펴낸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랜덤하우스)에서 한탄조의 이 자문에 자답한다. “나는 ‘분단국의 여배우’로서, (남편.사진 오른쪽) 신상옥 감독은 ‘분단국의 영화감독’으로서 조국의 비극에 희생양이 되는 경험을 했다.”

자서전 낸 원로 여배우 최은희

우리 현실에서 여배우가 직접 쓴 자서전은 희귀하다. 더구나 남과 북을 오가며 활동한 생존 여배우가 남긴 기록이라면 역사 사료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말마따나 조국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낸 배우의 경험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일흔일곱 여배우가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듯 써내려간 글은 결국 미래와 희망으로 뻗어간다. “내 기록을 통해 문화예술계의 과거를 정리해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한 여배우가 일생을 보내고 난 뒤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진정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뼈를 깎는 아픔을 이겨 내야만 한다”였다. 이 한마디는 지난 8월 출간된 남편 신상옥(1926~2006) 감독의 자서전 『난, 영화였다』(랜덤하우스)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영화에 미친 사나이’로 불리던 신 감독은 말했다.

“한국 영화의 초창기를 생생하게 증언할 만한 원로 영화인은 정말 몇 명 남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에 누군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계인에게 공감되는 열린 생각을 갖는 훈련, 이것이 나를 포함한 우리 영화계가 시급하게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무대를 겨냥한다면.”

최씨의 자서전은 한국 대중문화사가 놓쳐버린 많은 기억을 되살린다. 극단의 연구생으로 출발해 영화배우·감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 최은희씨의 개인사는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많은 사실과 인물에 대한 기록으로 값지다. 특히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겪었던 일들은 우리에게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어찌 이런 선 굵은 얘기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초의 강렬한 키스 신’이 연출됐다는 1958년 작 ‘지옥화’의 추억은 악조건을 영화사랑으로 이겨낸 당시 스태프들을 존경하게 만든다. 1년에 한국영화 300편이 나오던 1950~60년대 전성기에 배우들이 동시에 열 작품 이상 겹치기 출연을 했다는 보고도 새롭다. 당대의 명배우로 꼽히는 김승호 같은 경우는 하도 여러 편에 나가는 바람에 대사를 혼동했다니, 나름 행복했던 배우의 전성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최은희씨를 78년 북으로 불러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납치 이유를 북한 영화의 발전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다. 김 국방위원장은 “나는 북한 영화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감독으로는 신(상옥) 선생을, 우리 배우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교육자로는 최 선생을, 기렇게 두 분을 선택하게 된 겁네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내일은 남과 북의 경계 없는 곳에서 꽃피지 않을까, 최은희씨의 고백은 넌지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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