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읽기] 사랑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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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랑은 타인에 대한 갈구와 염원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라 흔히 일컬어진다. 그러나 기실 사랑은 애초에 원하던 대상을 소유하거나 그에게 지배당해도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다. 모든 욕망이 대상의 선취여부와 무관하게 한없이 지연되는 것처럼, 사랑은 그것을 부르거나 손에 넣는 순간 마음의 빈터에서 사라진다. 남는 건 어떤 사물이나 육체에 새겨진 흔적과 미미한 냄새 따위다. 흔히 마음의 발로라 생각하는 사랑이 알고 보면 육체의 물리화학적 반응에서 파생되는 감각의 착란이었다는 것.

시인 권혁웅의 세 번째 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민음사)는 연애시집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서동욱은 “연애시를 해설하는 멍청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자책하는 문장으로 해설을 시작한다. 그가 맞다. 사랑을 설명하려는 짓이나 연애시를 해설하는 짓 따위는 실전연애에서 연전연패한 입담꾼들의 어수룩한 자기위안에 불과할 뿐, 사랑에 관한 그 어떤 진실도 규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작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세상 만물이 감추고 있는 에로스를 들춰내는 시인은 연애도사인가? 섣부른 판단은 무리다. 다만 정작 연애도사는 연애에 대해 한 마디도 그럴듯한 말을 남기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만 되씹겠다.

“늑골 근처를 굴러다니는 사과 하나, 이미/ 벌레 먹고 햇빛 받아 쪼글쪼글해졌으니/ 오그라드는 게 손발만은 아님을 알겠다/ …(중략)…/ 내가 낙원에 도착하지 못하여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거나 생선을 굽지 못했으니/ 한 조각 목젖으로 남는 게 있기는 있을 것인가”(‘유혹하다’ 에서)

“낙원에 도착하지 못”한 내가 “한 조각 목젖으로 남는” 것 없이 “늑골 근처를 굴러다니는 사과 하나”에 시달리는 것. 뱉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제 목을 부러뜨린 귀신들”(‘다시, 목련의 알리바이’ 에서)과 전전반측하며 감각 표면의 반란들을 힘겹게 추스르는 허망한 노력 같은 것. 만물의 표정 속에 “간신히, 전속력”(‘폭풍 속으로’ 에서)으로 사랑의 촉수를 담그는 자에게 사랑은 늘 미완이다. 그 결여와 불만족의 에너지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열망과 좌절의 힘으로 삶의 표면을 시로 적실 수 있겠는가.

그에 반해 폴란드의 거장 쉼보르스카는 인간의 모든 삿되거나 무모한 열망들을 한참이나 건너뛴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사랑을 모르는 이들이여,/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고 큰 소리로 외쳐라.//그런 확신만 있으면 살아가는 일도, 죽는 일도/ 한결 견디기 쉬울 테니까.” (‘행복한 사랑’ 중에서)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은 그가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된 여러 번역본들 중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히 으뜸이라 할만하다. 60여 년에 걸쳐 씌어진 쉼보르스카의 시는 삶의 깊이에 대한 전면적 탐색과 우주의 넓이를 살피는 혜안으로 아뜩하게 펼쳐진다. 그 안에서 사랑은 때로 인생의 전부이자 제로로 남는다. 우주의 그늘과 볕을 동시에 아우르는 품 넓은 언어의 밭에서 삶은 늘 새로 태어나고 죽는다. 사랑으로 다친 상처 따위 바람결에 묻히고 삶의 또 다른 페이지를 펼칠 때 사랑은 내가 보려 했던 우주의 작은 창문으로 열렸다 닫힐 뿐, 내가 결국 보고자 했던 건 그(녀)의 자리를 스스로 만든 내 안의 불투명한 정념이었다. 먼 별의 기별에 귀를 쫑긋 세운 채 나는 지금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안도를 느낀다”(‘감사’ 에서)

강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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